첫째, 디지털 시대 예금 보장 한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다. SVB는 처음 위기가 알려진 뒤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55조원 넘는 돈을 빼내면서 ‘스마트폰 뱅크런’이 발생했다. 한국은 이런 일이 안 생길까. 지난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자금이 마를 때 한 저축은행에서 하루에 예금이 5%씩 줄어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고객들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밤새 인터넷뱅킹으로 예금을 옮긴 것이다. 단 20일이면 예금이 바닥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5000만원 예금 보장 한도로 뱅크런을 막을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1억원 한도가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셋째, 중소형 금융사가 무너져도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SVB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SIB)’이 아니었다. 하지만 파산하자마자 미국 정부가 구조(예금 전액 보장)에 나섰다. 다른 은행으로 뱅크런이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SVB는 SIB가 아닌데 사실상 SIB가 된 것이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선 불안도 빠르게 퍼진다. 단순히 대형은행만 튼튼하다고 해서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넷째, 리스크를 한 방향에서만 봐선 안 된다. SVB가 파산하기 전까진 미국 국채를 샀는데 망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SVB는 늘어난 예금을 굴리기 위해 미 국채를 대거 매입했다. 미 국채는 전통적으로 ‘무위험 자산’이었다. 하지만 미 중앙은행(Fed)이 초고속으로 금리를 올리자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위험 자산’이 돼버렸다.
SVB 사태가 터졌을 때 시장에서 가장 큰 혼란은 ‘왜 아무도 몰랐느냐’였다고 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정책당국도 몰랐고 신용평가사도, 애널리스트도 몰랐다. SVB가 망했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SVB가 망할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Fed를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자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얼마 전 사석에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이제 겨우 터널 입구가 보인다”고 했다. 위기의 끝이 보이기는커녕 아직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틀리면 좋겠지만, 틀렸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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