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한국인 최초 ‘보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왼쪽)가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을 받았다. 27년이 지난 올해 월계관을 쓰게 된 두 번째 국내 보험인이 배출됐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오른쪽)이다. 세계 보험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父子) 기업인이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기록을 세웠다.
신 의장은 “선친에 이어 보험 분야의 가장 영예로운 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다”며 “사람 중심 경영을 더욱 충실히 실천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 의장의 보험 명예의 전당 헌액식은 오는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IIS 연차총회에서 진행된다.
IIS는 신 의장을 ‘2023 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22일 발표했다. 세계 100여 개국의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임원, 보험학자 등 1000여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IIS는 1957년부터 보험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을 뽑아 보험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을 시상하고 있다. 수상자에겐 노벨상 수상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로리어트(Laureate)’란 칭호를 주고, 공적과 경영철학이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존된다.
조시 란다우 IIS 대표는 “신 의장이 변화·혁신과 통찰적 리더십, 사람 중심 경영을 통해 보험 명예의 전당 정신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신 의장은 교보생명이 외환위기 후유증을 앓고 있던 2000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외형 성장 대신 고객 중심, 이익 중심의 내실 성장에 집중했다. 중장기 보장성 보험 위주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고 영업 채널도 정예화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2500억원 적자를 내던 교보생명은 매년 4000억~6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신 의장에겐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자’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서울대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시절 시험관 아기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는 전언이다. 신 의장은 “고객과 임직원, 업계, 지역사회, 투자자, 정부 등 모두가 균형 있게 발전해야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조성하는 게 100년 이상 지속가능 경영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교보생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만 8조7000억원의 사회적 책임투자를 했으며, 5억달러 규모의 ESG 인증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이 같은 인본주의 경영은 선친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신용호 창립자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했다. “돈이 안 된다”는 주위의 반대에도 ‘국민서점’이라 불리는 교보문고를 세웠다. 일생을 인재 양성에 힘쓴 그는 국가 경제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의장은 “선친은 교육과 보험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기업가로 영원히 남고 싶어 했다”며 “‘세상에는 공짜와 비밀이 없다’는 선친의 신조는 교보생명이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선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최근 생명보험사의 업황은 녹록지 않다. 신 의장은 “이런 상황일수록 ‘고객 중심’이라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장은 금융지주사 전환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지주사 전환은 신성장 동력 발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관계사 간 시너지 창출, 주주가치 제고 등을 통해 지속가능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