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쌀 매입에 年 1조 들지만…"쌀값 안정도 식량 자급도 불가능"

입력 2023-03-23 18:20   수정 2023-03-24 02:33

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정부는 쌀이 일정량 이상 초과 생산될 때마다 의무적으로 초과분을 사들여야 한다. 여기에 드는 예산만 2030년까지 연평균 1조원에 달하는 데다 매입하고 2~3년 뒤엔 이 쌀을 사료용으로 매입가의 10%에 헐값 처분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쌀값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다. 이뿐만 아니라 쌀 대신 밀, 콩, 가루쌀 등 대체작물 재배를 늘려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던 윤석열 정부의 식량정책도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정부·여당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남는 쌀 세 배 늘고 연평균 1조원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해 쌀값 하락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는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넘게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 한도 내에서 쌀을 매입할 수 있다. 정부가 초과 생산량 중 얼마를 사들일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반면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보다 3~5% 이상 많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8%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 전량을 정부가 의무매입해야 한다. 정확한 기준을 어떻게 할지는 정부가 법에서 정한 3~5%(생산량), 5~8%(가격) 범위에서 시행규칙으로 정하게 했다. 정부의 재량권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초 ‘3% 이상 초과 생산, 5% 이상 가격 하락 시’ 의무매입하도록 한 원안에 비해 정부 재량권을 확대했다는 입장이다. 초과 생산량에 대한 시장격리(정부 매입)를 의무화하면 쌀값을 안정화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무매입이 쌀값 안정에도, 농업 발전에도, 식량안보에도 기여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개정안 원안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시장격리를 의무화했을 경우 밀, 콩 등 다른 작물 재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도 쌀 초과 공급량이 올해 22만6000t에서 2030년 63만1000t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 공급량이 늘면서 올해 80㎏에 18만원 수준인 산지 쌀값은 2030년 17만2000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여도 쌀값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쌀 의무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다. 농경연은 격리 의무화를 위해 투입하는 예산이 올해 5737억원에서 2030년 1조4659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30년까지 연평균 1조303억원이 투입된다. 정부가 매입한 쌀은 보관 기한(3년) 후 매입가 10~20% 수준의 헐값에 주정용·사료용 등으로 팔린다. 투입된 예산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중분해되는 것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쌀 의무매입이 현실화하면 돈은 돈대로 들고 정작 쌀값은 떨어져 농가에 되레 손해가 될 것”이라며 “연 1조원이면 청년 수천 명이 일할 1만㎡짜리 대형 스마트팜을 매년 300개 조성할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尹 식량안보정책도 유명무실해져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식량안보 정책의 기초를 무너뜨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쌀에 치우친 농업 포트폴리오를 밀, 콩, 가루쌀 등 대체작물로 다변화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란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논에 벼 대신 대체작물을 심으면 ㏊당 매월 최대 250만원을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각각 1%, 25%에 불과한 밀과 콩의 자급률을 2027년까지 각각 7.9%, 4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농경연은 쌀 시장격리가 의무화하면 2027년 밀과 콩의 자급률은 각각 4%, 26.4%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은 기계화율이 99.3%에 달해 다른 작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손이 덜 들어간다”며 “얼마를 생산하든 정부가 모두 사준다고 하면 애써 다른 작물을 심을 유인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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