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기 어려운 ‘고위험가구’가 60만 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기준금리가 급속히 인상되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여파로 고위험가구의 부실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실 우려 커진 고위험가구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고위험가구 비율은 전체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금융부채 보유 가구가 1230만 가구인 것을 고려하면 61만5000가구가 고위험가구에 해당한다. 2021년 말 기준 2.7%에서 1년2개월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고위험가구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부채자산비율(DTA)이 100%를 넘는 가구를 말한다. 소득의 4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해 부실 위험이 높은 가구를 의미한다.고위험가구의 평균 금융부채는 2억5000만원으로, 비(非)고위험가구(1억원)보다 1.5배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부실 위험은 지난 1년 사이 더 악화한 것으로 추정됐다. 고위험가구의 평균 DSR은 2021년 101.5%에서 지난달 116.3%로 확대됐다. DTA는 같은 기간 116.3%에서 158.8%로 크게 높아졌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전체 가계 부문 금융부채의 9%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 가구의 30.9%는 DSR이 40%를 넘었다. 자영업 가구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번 돈의 40%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는 의미다.
대출자, 소득의 40%는 빚 갚는 데 써
전체 가계대출 차주의 평균 DSR은 40.6%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을 보유한 사람은 소득의 40%를 원리금 상환에 쓴다는 의미다. 가계대출 차주 평균 DSR이 40%를 넘어선 것은 2018년(40.4%) 후 4년 만이다.DSR이 70%를 초과하는 고DSR 차주 비중은 15.3%로 나타났다. DSR이 100%를 초과해 소득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더 많은 차주는 8.9%로 집계됐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 DSR이 64.7%로, 전년(59.5%)보다 5.2%포인트 확대됐다. 중소득층(35.1%→37.7%)과 고소득층(37.5%→39.1%)은 DSR이 40%를 밑돌았다. 한은은 “가계 전반의 부실 위험은 낮다”면서도 “채무상환 부담이 과다하고 자산 처분을 통한 부채상환 여력도 부족한 고위험가구의 부실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불안지수 5개월째 ‘위기’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한 금융불안지수(FSI)는 지난달 21.8로 집계됐다. 작년 10월(23.5) 이후 5개월째 ‘위기’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FSI는 22 이상일 때 ‘위기’로 본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 안정화 조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나,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금융불안지수가 위기 단계를 유지했다”며 “특히 경제 주체의 신용위험과 무역수지 적자 등 대외 부문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금융 불균형 상황과 금융회사 복원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금융취약성지수(FVI)는 지난해 3분기 46.6에서 4분기 44.6으로 낮아졌다. 경제주체들의 위험 선호 경향이 줄면서 금융 불균형이 다소 개선됐기 때문이지만, 여전히 장기 평균(41.1)을 웃돈다. 한은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에 따른 국내 영향과 관련해 “국내 금융회사는 SVB와 자산·부채 구조가 다르고 각종 금융규제 등을 고려했을 때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SVB 사태 등으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지고,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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