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혹한기에 패션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 운영사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5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분 투자 형식이 아닌 '벤처 대출' 형태로 조달한 점이 이례적이다. 투자자의 위험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적인 수단으로 풀이된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파인트리자산운용이 '벤처 대출' 형태로 500억원을 투자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 회사의 누적 투자금은 2230억원이다.
일반적으로 벤처 대출은 투자사가 스타트업에 자금을 대출해주고, 특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유가증권인 '워런트'를 받는 형태로 집행된다. 돈을 빌려주는 기관은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현재의 기업평가 가치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고,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과도한 지분 희석을 막을 수 있어 미국 실리콘밸리의 선진 투자 기법으로 인식됐다. 워런트의 규모는 융자 금액의 1~2% 정도다.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등 대형 기술기업들이 이 같은 방식의 투자를 통해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사례가 흔치 않았다. 다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벤처 대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SVB의 주요 사업모델이 벤처 대출이다.
통상 벤처 대출을 실행할 땐 후속 투자 라운드를 염두에 둔다. 후속 투자에서 지금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융자 기관 입장에서 워런트를 행사해 신주를 인수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할 때도 후속 라운드의 투자금을 활용한다.
문제는 투자 시장의 침체가 계속돼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을 눈앞에 뒀던 메쉬코리아는 창업주와 대표자 지분을 담보로 360억원을 대출했지만, 후속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 결국 상환하지 못하고 매각 수순을 밟았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거래액이 조 단위로 상승했고, 월간 손익분기점(BEP)에 근접하는 사업모델을 구축했다"며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을 일축했다.
에이블리는 연내 공식적인 시리즈 C 투자 라운드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 초 9000억원의 기업가치로 500억원 규모 프리 시리즈C 투자를 받았다. 이후 투자 한파가 지속되며 아직 유니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투자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도 9000억원이다.
2015년 설립된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패션 앱 에이블리를 통해 성장해왔다. 주로 여성 의류를 취급하는 에이블리는 유명 인사가 디자인한 옷을 판매하는 ‘셀럽마켓 모음앱’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누구나 쉽고 빠르게 쇼핑몰을 창업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판매자가 오픈마켓 형태로 입점하는 ‘셀러스’와 쇼핑몰 운영 경험이 없는 창업자를 타깃으로 한 ‘파트너스’ 서비스를 내놨다.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강점이다.
에이블리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700만명으로 쿠팡, 11번가 등 대형 커머스 회사와 함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연간 거래액은 1조원이 넘는다.
강석훈 에이블리코퍼레이션 대표는 "투자 혹한기에도 사업 자금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 유니콘 라운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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