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물류는 통신 산업과 비슷합니다. 오가는 데이터는 물건과 같고, 특정 지점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효율적인 네트워크(물류망)을 구성해야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물류 스타트업 브이투브이의 권민구 공동창업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시 물류’ 판도를 바꿀 ‘메시 네트워크’ 개념을 한경 긱스(Geeks)에 소개합니다. 통신 산업에서 이미 활발히 쓰인 방식입니다. 중심 거점(허브) 물류에서 벗어나, 다중 연결을 통해 부하 부담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커머스를 통해 하루에 배송되는 물건이 2000만 개다. 전 국민의 40%가 하루에 한 번 이커머스를 통해 물건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물건 중에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처럼 같은 도시권 내에서 이동하는 물건이 있고,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다른 도시권으로 이동하는 물건도 있다. 전자를 도시 물류, 후자를 도시 간 물류로 정의할 수 있다.
국내에 택배가 처음 탄생한 1992년에는 도시 물류량보다 도시 간 물류량이 훨씬 더 많았다. 도시 간 물류 처리에 더 적합한 ‘허브 앤 스포크 네트워크(Hub&Spoke Network)’가 채택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배경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도시 물류량이 훨씬 많아졌다. 이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물건을 받는 소비자들이 밀집한 지역에 최대한 가깝게 물건 출발지를 위치시키기 위해 풀필먼트 센터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수도권에서 출발하여 수도권으로 도착하는 물동량은 전체 물동량의 40%를 상회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도시 물류는 도시 간 물류 처리에 더 적합한 허브 앤 스포크 네트워크에 묶여서 처리되고 있다. 도시 물류를 처리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다중 연결 '노드', 배송 지연 막는다
도시 물류를 이용하는 유통사와 소비자 모두 첫 번째로 기대하는 것은 배송 속도이다. 애초에 도시 물류량을 급증시킨 가장 주요한 원인인 풀필먼트 센터가 도입된 이유도 배송 거리를 줄여 배송 속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주문한 물건을 당일에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기껏 풀필먼트 센터를 소비자 근처에 구축해놨는데, 정작 물건은 당일에 배송하지 못하는 것은 상호 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도시 물류가 해결해야 하는 두 번째 숙제는 대량 운송이다. 현재 수도권 도시 물류량은 하루 800만 건에 이른다. 이 중에서 소비자에게 당일 배송되는 물건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이륜차 등을 이용해 일부 당일배송을 하고 있지만, 이륜차의 운송 용량으로는 엄청난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다. 대량 운송이 가능해지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배송 단가를 낮추는 효과도 발생한다. 결국 작금의 도시 물류는 당일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빠른 배송 속도를 유지하면서, 대량 운송이 가능한 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메시 네트워크는 통신 산업에서 쓰이는 네트워크 토폴로지(망 구성 방식)다. 각각의 ‘노드(데이터 지점)’가 다른 노드에 그물망처럼 다중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 곳의 중심 거점(허브)으로만 연결되어있는 허브 앤 스포크 네트워크에 비해 부하를 고르게 분산하여 처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메시 네트워크를 도시 물류에 적용하는 데 성공할 경우 배송 속도와 대량 운송,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메시 네트워크는 물건마다 지속해서 짧은 배송 거리를 할당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허브에 들렀다 올 필요가 없고, 많은 노드 사이에 배치된 수많은 경로 중에서 가장 최적의 경로로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송 거리가 짧아지면 그에 비례하여 배송 시간이 감소하게 된다.
배송 관리 시스템, 연속 데이터 수집 '필수'
허브 앤 스포크 네트워크의 경우 물동량 증가에 따라 허브의 수용 능력을 지속해서 늘려나가는 ‘스케일 업(서버 교체 및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인프라를 확장하게 된다. 허브의 집적도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대량의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천평의 면적이 요구되기 때문에, 필요한 자본의 집약도도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대형화된 허브에서 물건들의 분류 및 대기 시간 증가로 배송 속도를 다 상실해 버린다는 것이다.메시 네트워크는 물동량 증가에 따라 작은 노드를 하나 추가해, 기존 네트워크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스케일 아웃(서버를 여러 대 붙여 시스템을 확장하는 개념)’ 방식으로 인프라를 확장해 나간다. 증가한 부하를 어느 특정 노드 한 곳에 전가하지 않고 모든 노드가 나누어 수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노드마다 급격한 집적도 상승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각 노드에서의 분류 및 대기 시간을 상승시키지 않아 물동량 증가에도 지속해서 빠른 배송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도시라는 좁은 지역에 물건의 출발지와 도착지가 서로 매우 가깝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속도와 확장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메시 네트워크의 활용이다. 그러나 ‘전파’라는 매개체로 ‘통신 산업’에서 기능하고 있는 이 방식을 ‘차량’이라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는 ‘물류 산업’에 이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메시 네트워크는 노드와 단말의 개수가 매우 많다.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라우팅 작업을 통해, ‘로드 밸런싱(부하 분산)’을 상시 관리해야 하는 이슈를 가지고 있다. 통신 산업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전파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환되고 수집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슈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물류 산업의 현재 상황은 여기서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 물류 산업에서 쓰이고 있는 대부분의 배송 관리 시스템(TMS)은 데이터를 연속적이 아닌 이산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특정 노드에 입고되거나, 출고되는 시점과 같이 특정한 이벤트가 발생한 시점에만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 수집 방식으로는 실시간 로드 밸런싱이 요구되는 메시 네트워크를 구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물류를 기준으로 '라우팅 규약' 쪼개라
따라서 물류 산업에 메시 네트워크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도입해야 하는 것이 ‘실시간 TMS’다. 물류 진행 상황에서 물건, 차량, 기사, 거점, 노선의 시각, 위치, 상태 등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스트리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꼭 필요한 것이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라우팅을 통한 로드 밸런싱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통신 산업에서 노드 간의 지연은 초 단위에 불과하나, 물류 산업에서는 분 단위, 시간 단위로 늘어난다. 이러한 관측 세계의 규모 차이 때문에 라우팅 규약을 구성하기 위한 기본 단위를 전부 물류 산업에 맞게 재설정해야 하는 이슈가 발생한다. 물건의 크기, 무게, 차량의 속도, 연비, 시간대별 교통 트래픽 현황, 노드에서의 상차, 하차, 분류, 대기 시간, 기사별 배송 능력 등 무수히 많은 단위를 현장의 물류 운영 과정에서 측정해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역량은 이미 정보기술(IT) 산업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으나, 그 기술력이 아직 물류 산업에 침투되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관련된 기업들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대중교통망의 네트워크 토폴로지는 다양한 방식을 조합한 형태다. 하지만 많은 노드를 활용하고, 최적 경로로 사람들을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메시 네트워크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메시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도시 물류에 정착하면, 물건이 이동하는 형태가 우리 사람들이 대중교통망을 통해 이동하는 형태와 유사해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도권 내 어디든 몇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듯이, 대량의 물건도 수도권 내에서 어디든 몇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메시 네트워크가 도시 물류에 구현될 날을 기대해 본다.
권민구 브이투브이 공동창업자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재학
△前 ONEKEY 공동창업자
△前 QARA 매니징 파트너
이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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