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값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청년과 신혼부부, 저소득층에게 내 집 마련이 보다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추진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인 '고덕강일 3단지' 500가구 사전 예약에서 평균 40대 1의 경쟁률이 나왔습니다. 청년과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33대 1, 일반공급도 67대 1, 청년 특별공급은 1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건물만 분양하기에 분양가격이 약 3억5000만원에 그칩니다. 여기에 매달 40만원 정도의 토지 임대료가 붙습니다. 추후 본청약 시점에서 건물 분양가와 토지 임대료가 확정된다고 합니다. SH공사는 내년까지 반값 아파트를 8000가구 이상 공급할 계획입니다. 당장 5월에는 마곡에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인데, 마곡지구 10-2단지와 택시 차고지 부지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향후 강서, 은평, 고덕강일 등에서 추가 분양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좋은 제도가 시행돼도 청약에 탈락한 분들은 현실적 박탈감이 점점 더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공공택지의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탓에 반값 아파트를 아무리 늘려도 공급 물량은 1만 가구에 미치지 못합니다. 서울 밖 경기도 신도시 등에서는 아직 반값 아파트를 추진한다는 얘기조차 없습니다. 대규모로 공급되는 물량은 대부분 민간 아파트인데, 분양받자니 공사비와 대출이자가 크게 올라 부담이 큽니다.
민간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계약금을 내고 중도금을 대출받아 낸 뒤, 입주하는 시점에 잔금을 냅니다. 목돈이 없다면 전세 세입자를 구해 잔금을 치르게 됩니다. 결국 내 집 마련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아야 합니다. 고정금리이면서 장기 모기지가 가능한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됐다지만, 올해만 이용할 수 있는 한시적인 상품입니다. 개인이 주택금융공사에 신청해서 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개인의 부담을 줄이면서 내 집을 마련할 방법은 없을까요.
국내에 임대형 민자사업(BTL)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시설 임대료를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주로 쓰였는데 비교적 최근 기숙사나 도서관, 박물관 등의 시설에도 도입됐습니다. 가령 대학교에 기숙사를 BTL 방식으로 공급하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임대료를 받아 기숙사 건설비용을 장기간에 나누어 갚아나가게 됩니다. 일종의 건설공사 할부 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공택지 내에 공급하는 민간 아파트에 이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정부가 입찰받아 가장 적절한 운영방식을 제시한 건설회사를 선정하고 고정금리를 보장해주면 청약 당첨자들은 20년에서 30년 동안 안정되게 분양 비용을 납부할 수 있습니다. 고정금리로 저리 융자를 지원받게 되므로 원리금 부담이 큰 중도금과 잔금 대출이 필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건설회사와 금융회사 등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나 미분양에 따른 위험을 피하면서 금리 지원도 받게 되기에 손해 볼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민간 아파트로 확대 적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도입 과정에서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BTL 사업을 공공택지 민간 아파트로 확장하면 아파트는 대출받아 사는 것이 아닌 장기 할부로 구매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전국적인 보급이 가능하기에 청년과 신혼부부,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을 보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값 아파트의 좋은 혜택을 많은 이들이 누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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