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품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 A씨는 최근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 회원이 보낸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받았다. 자신의 사진과 브랜드명이 버젓이 담긴 '쌍둥이' 사칭 계정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로 SNS를 통해 회원을 모집하고 건강식품 및 건강 솔루션을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단골 회원의 귀띔 이후 SNS를 샅샅이 뒤진 A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살짝 바꾼 유사한 SNS 계정이 무려 십여개나 검색됐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계정이라 생각할 정도로 똑같이 베꼈다"며 "신고하긴 했지만, 사칭 계정을 일일이 찾을 수도 없어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SNS에서 '사칭 계정'이 급증하고 있어 피해를 호소하는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공식 SNS 계정과 유사하게 아이디를 만들고 프로필 사진까지 동일하게 설정하는 등 갈수록 사칭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사칭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이 계정은 2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이 회장의 증명사진을 프로필에 설정해 놓고, 갤럭시 언팩(신제품 공개 행사) 시기에 맞춰 광고 영상을 올려놓거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고 바이든 공식 계정을 태그하는 식이다. 지난해 이 회장이 삼성SDS를 방문한 사진을 올리면서는 "곰탕 맛있다" "아이폰도 있었다"고 적기도 했다. 팔로워 수가 무려 36만명 가까이 된다.
실제로 가짜 이재용 회장의 SNS 게시물에는 누리꾼들 댓글도 수백~수천 개씩 달리고 있다. 계정 프로필 하단에 영어로 '팬 페이지'라고 적혀 있으나 굳이 '더보기'를 눌러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아직까지 이 회장이나 삼성전자는 적극 대응을 하진 않고 있다.
이 회장과 같은 기업인뿐 아니라 방송인 홍석천, 배우 박서준·윤시윤·다니엘 헤니·정우성·변요한·진선규부터 가수 박군·김종진·이상민 등 유명인들이 사칭 계정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칭 계정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 이달 초 우연히 자신의 사칭 계정을 발견해 신고 조치한 한 사용자는 "내 사진과 남편, 심지어 자녀들 사진까지 도용해 부업으로 돈 벌게 해주겠다는 사칭 계정을 보고 깜짝 놀라 신고했다"면서 "중국 등 해외에서 사칭 계정이 만들어진 경우에는 없애기도 쉽지 않고, 신고해도 가이드라인 위반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와 여러 번 반복 신고해 겨우 사칭 계정이 삭제됐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연도별 사이버 범죄 통계 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 계정 도용 사례는 1067건으로 전년(751건) 대비 42% 증가했다. 특히 해외 플랫폼 업체에서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회원정보 제공에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차명 계정을 이용하는 등의 경우도 많아 가해자 특정이 안돼 실질적 단속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일반적 사칭의 경우 처벌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단순 사진 도용 수준의 사칭범은 처벌 규정이 없다. 누군가가 피해자 사진을 허락 없이 퍼가 사칭 계정을 만들어도 현실적으로 형사 처벌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국내에서는 사칭으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대응 가능하다. 예컨대 타인의 사진을 무단 수집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초상권 침해'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식이다.
또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해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처벌 가능한데, 일반인 입장에서 증거 수집이나 변호사 자문을 거치려면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동의 없이 타인을 사칭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2020년 7월 국내에서도 단순 사칭범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도용 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피해자들도 유명인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해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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