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출산은 젠더 갈등 때문"…美 언론인 진단 나와

입력 2023-03-24 18:14   수정 2023-03-24 18:19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한 배경이 높은 주거 비용이나 양육비가 아니라 '젠더 갈등' 때문이라는 외신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언론인 안나 루이즈 서스만은 21일(현지 시각) 미 시사 주간지 디애틀랜틱에 기고한 ‘한국인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칼럼에서 “한국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이민상태보다는 성별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단층”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것이 기록적인 저출산을 기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서스만은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2005년 이후 1500억 달러(약 195조원) 이상을 쏟아붓는 등 여러 지원을 해왔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로 높은 주거비와 양육비, 여성 친화적이지 않은 직장 문화 등이 흔히 출산의 장애물로 꼽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남녀 사이의 관계 악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스만은 먼저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을 내어놓았다. 국가 주도적 경제 성장,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던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외환위기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많은 한국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게 되었다고 서스만은 분석했다.

그러나 사회적 성역할 변화는 그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결국 결혼·출산으로 직장에서 경력 단절을 겪게 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교육 수준의 증대만큼 자아실현 등 꿈이 커진 여성들에게 가정에서의 역할이 전적으로 전가되는 상황이 이어져 분노가 쌓이게 됐다는 것.

서스만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도 언급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해당 사건으로 한국의 많은 젊은 여성이 분노하고 겁에 질렸다”며 “실제 여성가족부 조사를 보면 한국 여성 62%가 파트너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비연애·비 성관계·비혼·비출산을 뜻하는 이른바 ‘4B(非)’를 추구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서스만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만도 짚으며 한국의 병역 문제를 언급했다. 남성들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18개월에서 2년 정도 먼저 진입해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는 주장이다. 서스만은 그러면서 “남성들의 반발 물결 속에 작년 3월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라고도 밝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메갈리아'·'워마드'로 대표되는 온라인상 젠더 대립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는 "일베 회원들은 한국 여성을 '김치녀'로 묘사하고, 허영심이 많고, 영악하고, 물질주의적인 것으로 정형화한다"며 "이들이 공유하는 '역차별'에 대한 밈과 불만에 대해 한 한국 작가는 '편집증적 여성혐오'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에 여성들도 반격에 나섰다. 서스만은 "일부가 메갈리아 웹사이트를 만들어 동일한 수사적 장치와 혐오적 표현을 남성 공격에 사용하는 '미러링' 기술을 터득했다고 설명했다.

서스만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고, 2018년 성폭력 폭로 운동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된 이후 구글 상에서 ‘페미니즘’ 검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메갈리아 등을 통한 방법이 남성을 계몽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며 화나 있는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더러운 단어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남녀 간 상호 불신과 증오로 인해 여성은 물론 남성도 결혼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추게 된다고 서스만은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장래 배우자의 페미니즘적 성향’이나 ‘독박 경제 활동’을 우려해, 여성들은 ‘비대칭적 가사 분담’을 걱정해 결혼을 꺼린다는 결혼정보업체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서스만과 인터뷰한 한 사회학자는 “남녀 사이 불신과 증오가 있다는 것이 한국의 출산율 감소세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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