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364만원 '무조건' 준다했더니…9000명 몰렸다

입력 2023-03-25 20:32   수정 2023-03-25 21:02


본업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아일랜드 남부 킬케니에 사는 만화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이언 페이(32). 그는 최근 정부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예술가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주 325유로(약 45만5000원)를 생활비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발됐다는 것.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페이의 사례처럼 아일랜드 정부가 예술가들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장, 생계 걱정 없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실험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별도 구직활동 없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캐서린 마틴 아일랜드 관광문화예술부 장관은 지난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이 정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음악·문학·영화·시각예술·연극·서커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90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지원서를 냈고, 이 가운데 2000명이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원자들은 문화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8200명이 자격이 인정됐고 그중 무작위로 2000명이 뽑혔다. 선정에 작품의 질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들은 앞으로 3년간 매년 1만6900유로(2364만2000원)에 달하는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게 된다.

시나리오 작가 리디아 멀비(47)는 시범사업 대상으로 뽑힌 후 통신사 일을 그만두고 스릴러나 공상과학(SF) 프로그램 각본을 쓰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3년은 짧은 시간"이라며 수혜 기간 제대로 자리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NYT는 핀란드, 독일,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의 초기 기본소득 실험에서는 직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이 이뤄졌지만, 점차 문화 부문 종사자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미국 뉴욕에서는 예술가 2400명에게 월 1000달러(130만원)씩 지급하는 민간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샌프란시스코와 미네소타에서도 비슷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찬반 논쟁도 불거지고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소득 보장이 다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나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일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공짜 돈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아일랜드 정부는 기본소득 지급 대상 2000명과 별도로 아무런 금전 지원이 없는 대조군 1000명을 설정, 향후 생계와 예술활동에 어떤 차이가 벌어지는지 비교 분석해볼 계획이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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