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내가 무어의 법칙의 그 무어’라고 얘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무어는 한 인터뷰에서 논문 발표 후 2~3년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연구 결과가 ‘법칙’으로 전 세계에 통용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 그의 속내와 별개로 ‘매년 성능 2배 향상’은 반도체 회사들의 금과옥조로 자리 잡았다. 엔지니어들은 밤을 새우며 연구했고 매년 개선된 반도체를 공개했다. 전자산업도 덩달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무어의 삶도 탄탄대로에 올랐다. 그는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만 남쪽 협곡 지대에 인텔을 설립했다. 인텔은 1972년 ‘인텔 8008’ 프로세서를 IBM에 납품하며 PC 시대를 열었다. 반도체를 통해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인텔의 전성기엔 항상 무어가 있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X86’ 시리즈로 대표되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연이어 히트시켰다. 인텔은 그의 공을 기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캠퍼스를 ‘고든무어파크’로 명명했다.
은퇴 이후에도 무어는 인류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00년 부인 베티와 함께 자선재단을 설립했다. 누적 기부금은 51억달러(약 6조6300억원)에 달한다. 2005년엔 빌 게이츠를 누르고 미국 1위 기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4일 무어가 하와이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향년 94세. 세계적인 엔지니어들이 추모의 뜻과 함께 “인류 발전에 공헌한 무어의 뜻을 잇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오늘도 ‘무어의 법칙’을 이어가기 위해 고성능 칩을 개발 중이다. 무어가 뿌린 씨앗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세상을 바꿀 것이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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