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를 통해 정성일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는 이미 '대학로 프린스'로 불릴 만큼 연극계 스타다. '더 글로리'의 세계적인 인기로 관심과 러브콜이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다시 또 무대에 올라 연극 '뷰티풀 선데이'와 뮤지컬 '인터뷰'를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더 글로리' 후 티켓이 더 잘 팔리고 있냐"는 질문에 "이전에도 제가 안 팔리는 배우는 아니었다"며 '프린스'의 여유를 보여준 정성일이었다.
'더 글로리'는 학폭으로 영혼까지 망가진 여성이 인생을 걸고 준비한 복수를 담은 작품. 정성일이 연기한 하도영은 학폭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을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 넣은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의 남편이다. 극 중 '나이스한 개XX'로 소개될 만큼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에 자신의 뜻대로 살아왔지만, '매너'라는 사회적인 가면으로 이를 감추고 있는 인물이다.
문동은에게는 박연진에게 복수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되지만, 문동은과 바둑을 두면서 묘한 끌림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더 글로리' 시청자들에게 "절제된 복수와 어른 섹시의 매력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직접 마주한 정성일은 하도영만큼 '나이스'했지만, 보다 밝고 유쾌하며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수영 선생님께서 사인 요청을 하셨다"며 "아이는 '사인'이 뭔지도 모르고, '선생님이 받아오라고 했다'며 엄마한테 말했다는데, 작품이 잘될 줄 알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주목받을지 몰라 너무 감사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아 '이게 맞나' 싶다"면서 달라진 주변의 시선을 전했다.
"방송인 유재석을 닮았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까지 출연한 정성일이었다. '더 글로리' 출연 전까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정성일은 "너무 좋은 분이라 지금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저와 그분의 얼굴이 반반씩 섞인 합성 사진"이라며 신난 표정을 보였다.
밖에서는 '연진이 남편', 집에서 아내에게는 "하도영 씨"라고 불린다는 정성일은 "'더 글로리' 전엔 별명이 '대학로 프린스'가 아니었냐"는 말에 "대학로에 젊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민망하다"면서도 부인하지 않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입담에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보이는 인간 정성일과 '더 글로리' 속 하도영과는 간극이 커 보였다. 하지만 정성일은 "밝아 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성격은 어두운 편이었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게 힘들어서 유쾌하고 활발하게 바꾸려 노력했죠. 밖에서 일할 때, 사람을 만날 때엔 재밌게 있고,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땐 하도영과 같은 부분으로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떨어진 거 같고요."
날카로운 인상의 하도영을 보여주기 위해 4kg을 감량했고, 엔딩 장면에 등장한 '배운'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액션 스쿨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도영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정성일이 고민했던 건 '나이스한 *새끼'가 언급된 장면이었다. 하도영이 비 오는 날 비서에게 비싼 와인을 주면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불러일으킨 장면은 '나이스'한 매너와 '*새끼' 같은 기득권의 양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 역시 하도영의 양면적인 모습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이 모습을 보면서 명확하게 찾았어요. 짧은 장면 안에서 어떻게 하면 양면성이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죠."
하도영이 박연진과 불륜 관계였던 전재준(박성훈 분)을 직접 처단하는 것 역시 이런 성격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전재준에게 교통사고를 내고, 그를 공사장에 데려오는 것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지만, 결정적인 '살인'이라는 행위는 본인이 직접 하면서 '약점'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인간 정성일로서는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라는 복수였지만, 그는 "하도영은 명확한 답을 원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 같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찬사를 받았던 하도영과 문동은의 미묘한 케미스트리는 모든 공을 송혜교와 제작진에게 돌렸다.
"송혜교 씨는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멋있고, 재밌어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때 연기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같이 연기해서 너무 좋았죠. 실제로 보니 '아, 이래서 오래, 길게 연기하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을 보여줘서 저도 덩달아 집중할 수 있었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정성일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연예인 병에 걸릴 나이도 지났다"면서 "저 스스로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차량과 의류 광고까지 각종 광고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술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보다 확실히 주변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주변 환경들도 변했고요. 하지만 저는 살아온 그대로, 그 자리에, 그대로 가고 있어요.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많아져서 감사하고 기분은 좋지만, 그냥 거기까지인 거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