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네트워크’는 통신산업에서 자주 쓰이던 망 구성 방식이다. ‘노드(데이터 지점)’와 다른 노드가 그물망처럼 다중 연결된다. 한 곳의 중심 거점(허브)으로 연결된 허브 앤드 스포크 네트워크에 비해 네트워크에 걸리는 부하가 고르게 분산된다. 메시 네트워크가 도시 물류에 적용될 경우, 배송 속도와 대량 운송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메시 네트워크는 물건마다 지속적으로 짧은 배송 거리를 할당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허브에 들렀다 올 필요가 없고, 많은 노드 사이에 배치된 수많은 경로 중에서 최적을 찾을 수 있다. 배송 거리가 짧아지면 배송 시간은 비례해서 감소한다. 허브 앤드 스포크 네트워크는 물동량 증가에 따라 허브의 수용 능력이 늘어야 한다. 요구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필요한 자본의 집약도도 함께 증가하고, 대형화된 허브에선 물건의 분류 및 대기 시간이 증가한다. 배송 속도를 이 지점에서 모두 상실해 버린다.
메시 네트워크는 물동량 증가에 따라 작은 노드를 하나 추가해 기존 네트워크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스케일 아웃(통신산업에서 서버를 여러 대 붙여 시스템을 확장하는 개념)’ 방식으로 인프라를 확장해 나간다. 증가한 부하를 어느 특정 노드에 전가하지 않는다. 모든 노드가 나눠 수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각 노드에서의 분류 및 대기 시간을 상승시키지 않는다. 물동량 증가에도 지속적으로 빠른 배송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전파’라는 매개체로 ‘통신산업’에서 기능하고 있는 메시 네트워크를 ‘차량’이라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는 물류산업에 이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노드와 장치 수가 매우 많아 실시간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선택 절차) 작업이 필요하다. 통신산업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전파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환되고 수집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물류산업의 현재 상황에서는 여기서부터 난관이다. 대부분의 물류산업에서 쓰이고 있는 배송 관리 시스템(TMS)은 데이터를 연속적이 아니라 이산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특정 노드에 입고되거나, 출고되는 시점과 같이 특정한 이벤트가 발생한 시점에만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 수집 방식으로는 실시간 밸런싱 작업이 요구되는 메시 네트워크를 구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통신산업에서 노드 간 지연은 초 단위에 불과하나 물류산업에서는 분 단위나 시간 단위로 늘어난다. 이러한 관측 세계의 스케일 차이 때문에 라우팅 규칙을 구성하기 위한 기본 단위를 전부 물류산업에 맞게 재설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건의 크기, 무게, 차량 속도, 연비, 시간대별 교통 트래픽 현황, 노드에서의 상차, 하차, 분류, 대기 시간, 기사별 배송 능력 등 무수히 많은 기본 단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역량은 이미 정보기술(IT) 산업에 충분히 내재돼 있으나 그 기술력이 아직 물류산업에 침투되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관련 기업들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대중교통망의 네트워크 구성 방식은 다양한 방식을 조합한 형태지만 많은 노드를 활용하고 최적 경로로 사람들을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메시 네트워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메시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도시 물류에 정착하면, 물건이 이동하는 형태가 사람들이 대중교통망을 통해 이동하는 형태와 유사해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도권 내 어디든 몇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듯이, 대량의 물건도 수도권 내에서 어디든 몇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메시 네트워크가 도시 물류에 구현될 날을 기대한다.
권민구 브이투브이 공동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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