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우파 연립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가 갈등 격화로 치닫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뜻에 반발하는 국방부 장관을 해임했다. 이에 여당을 비롯한 각계가 반발하면서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시위에 나섰다. 미국 백악관도 우파 연정의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6일 네타냐후 총리는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갈란트 장관이 전날 TV 생중계를 통해 “사법부 무력화 법안 입법을 중단하라”고 정부에 요구한 다음 날 바로 나왔다. 이 입법에 반대하는 예비군 병력들이 훈련 및 복무 거부 선언을 했는데 이에 갈란트 장관이 강경 대처하지 않았다는 게 해임의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우파 연정은 사법부의 권한 축소를 추진해왔다. 이스라엘의 연성헌법에 반하는 의회 입법을 대법원이 막지 못하도록 하고 여당의 법관인사위원회 제어력을 높이는 게 골자다. 지난 23일엔 우파 연정 주도로 대법원의 총리 탄핵 판결권과 검찰총장의 총리 직무 부적합 여부 결정권을 없애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 법조계, 예비군 인사들은 12주째 반발 시위를 계속하는 상황이다.
해임 직후 갈란트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스라엘 국가 안보는 내 인생의 사명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총리 결정에 반대의 뜻을 드러냈다. 다른 인사들도 집단 반발했다. 아사프 자미르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는 이날 갈란트 장관의 해임 결정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다. 자미르 총영사는 트위터에서 “나는 더 이상 정부를 대표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횃불로 남게 하는 게 내 의무”라고 강조했다.
야당 인사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해임 결정에 대해 “국가 안보를 해치고 모든 국방 관료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반(反) 시온주의 정부가 갈 데까지 갔다(new low)”고 비판했다.
시위도 격화됐다. 이날 텔아비브에선 시위대 수만명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로 한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모닥불을 피웠다. 예루살렘에선 시위대 수천명이 네타냐후 집 주변 장벽을 무너뜨린 뒤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 앞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브엘세바, 하이파 등 다른 이스라엘 도시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이스라엘 경찰은 물대포로 시위 통제에 나섰다.
미국도 이스라엘 우파 연정의 사법 개혁에 우려를 표했다. 이날 에이드리언 왓슨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우리는 작금의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는 견제와 균형으로 강화되며,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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