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입법을 추진하면서 재건축 인기가 높아지는 반면, 리모델링 아파트는 외면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요자들이 리모델링 아파트를 외면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인 내력벽(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벽) 철거 허용 여부가 내달 판가름 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28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15년 9월 국토부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설연)에 용역 발주한 '리모델링 시 내력벽 실험체 현장재하실험'의 평가 기한이 이달 마감된다. 건설연은 내력벽을 부분 철거해도 아파트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국토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석 건설연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업계는 현행 기술력으로 내력벽 철거가 건축물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정부는 정무적 판단에 따라 불허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술적 판단은 과학·기술적 검증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건설연의 의견을 참고해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가구 내 내력벽은 철거가 가능하지만, 더 많은 하중을 지탱하는 가구 간 내력벽은 철거가 불가하다. 이는 리모델링 아파트의 경쟁력을 낮추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90년대 아파트는 전면에 방과 거실이 하나씩 들어간 2베이 구조가 많은데, 이 구조로 배치된 가구 간 내력벽을 유지해서는 거실과 방 3개가 나란히 배치된 최신 4베이 구조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를 모두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은 최신 평면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지만, 내력벽을 유지해야 하는 리모델링은 평면에 제약이 불가피하다"며 "리모델링 설계가 세로로 길어지는 것도 내력벽에 막혀 가로를 넓힐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력벽으로 인해 리모델링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한다. 안양시 동안구 '목련 3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지난해 말 리모델링 조합 해산 여부를 묻는 임시총회를 열었다. 지자체 심의를 통과했던 내력벽 철거 설계가 뒤늦게 불법이라고 통보받은 탓이다. 결국 목련 3단지는 내력벽을 유지하면서 복층 구조를 도입해 개별 가구의 면적을 넓히기로 했다.
정부가 안전진단 문턱을 낮추고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허용하는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늘어가는 추세다. 많은 분담금을 내면서도 4베이 등 최신 설계를 누릴 수 없어 손해라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거여 1단지'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이달 임시총회를 열고 2년간 운영해온 추진위 해산을 결정했다.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 14단지 두산' 등 일부 단지에서도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 징구(동의서 모집)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일선 관계자들은 용적률이 높은 아파트에는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특별법을 통해 용적률 500%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극히 일부인데다 재건축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리모델링은 특별법 통과 등이 불확실한 재건축에 비해 사업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한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은 용적률 500%가 무조건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부분의 단지는 그런 용적률을 구경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애초 용적률이 높고 대지 지분이 적어 재건축이 불가능하니 리모델링을 선택했다면, 용적률을 약간 완화하더라도 사업성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설 업계에서는 가구 간 내력벽 철거가 허용되면 다양한 평면이 가능해져 리모델링의 인기가 다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할 수 있다면 4베이를 비롯해 다양한 최신 평면을 적용할 수 있다"며 "평면에서의 제약이 사라진다면 재건축에 비해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리모델링 선호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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