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새 책을 내고 한국을 찾은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사진)의 말은 거침없었다. 그는 2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미·중 갈등, 법인세율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을 거리낌 없이 밝혔다.
장 교수는 “은행 파산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의 후편”이라며 “당시 막대한 돈을 풀어 시장 붕괴를 막았을 뿐 위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1929년 대공황 때와 비교했다. 뉴딜 정책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과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했던 것과 달리 2008년 위기 땐 근본적인 개혁 없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는 “0%대 이자율이 10년 동안 이어진 것은 350년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가격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시장 기능이 작동할 수 없었다”고 했다. 0%대 이자율에선 10% 이윤을 내는 사업과 5% 이윤을 내는 사업이 똑같이 취급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은행들이 자기자본을 많이 확충해 2008년 당시보다 안전해진 것은 맞지만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에 대해선 한국이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나라”라며 “일본처럼 쉽게 한쪽 편을 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은 80%, 일본은 37%를 기록했다. 장 교수는 미국도 중국과 하루아침에 모든 관계를 끊기 힘들다고 했다. 미국의 제조업 생산 시설이 대부분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군사력에 관계된 반도체 등은 강력하게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선 실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한국도 어느 한쪽을 선뜻 편들기보다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시간을 최대 주 69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임금을 낮추거나 노동 시간을 늘려선 우리보다 더 임금이 낮고 더 많이 일하는 개발도상국과 경쟁이 안 된다”며 “기술을 개발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등 생산성을 높이는 정공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율과 관련해선 “세율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세금을 낸 만큼 정부로부터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기업들은 ‘우리가 이만큼 세금을 내는 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이런 부분은 좋지 않으니 개선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음식 재료를 소재 삼아 경제와 관련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 교수는 “모든 시민이 경제학을 알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사람이 경제학을 쉽게 접할 수 있게 음식을 소재로 미끼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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