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은 2019년 조사에서 한국 노동 유연성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34위로 진단했다. 사실상 꼴찌다. WEF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관련 집계를 중단했으나 상황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엔 대기업발 급여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해 국내 기업들의 인건비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실적이 급감하고 있어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인건비 급증은 인력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급여를 올리는 대기업발 인플레이션이 벌어진 게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2020년 플랫폼과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런 현상은 2021년과 지난해 반도체, 전기전자, 조선 등 업계 전반으로 확산했다.
경영계는 글로벌 기업들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인원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노동시장 경직성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정규직은 정리해고 시 노조가 합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각종 법률과 공공정책도 해고를 제한하고 있다”며 “한국은 법적·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데 따른 징계성 해고가 아니면 정규직을 내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개발자 인건비 상승으로 어닝쇼크가 발생한 네이버도 인건비가 16.38% 늘어 상위권을 기록했다. 젊은 개발자가 많은 카카오뱅크는 영업이익이 28.89% 늘었는데 인건비 증가율은 두 배에 가까운 44%에 달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MZ세대의 등장이 인건비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젊은 직원이 많은 인터넷, 플랫폼, 배터리 기업들의 인건비가 최근 들어 급증한 이유”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 넘게 감소했지만 인건비는 27.98% 급증했다. SK이노베이션(79.7%), LG에너지솔루션(27.7%),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15.6%) 등 2차전지 관련 기업들도 인건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기대 이하의 실적(영업이익 0.67% 감소)을 냈지만 인건비는 21% 급증했다. LG전자는 영업이익이 12.5% 줄었지만 인건비는 4.63% 늘어났다. 한국전력은 영업손실이 32조6551억원으로 전년 대비 여섯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인건비는 0.76% 줄어드는 데 그쳤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 여파로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감소하고 있지만 인건비는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기업들의 현금 흐름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