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31일 07:5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의결권자문사 관리감독 방안 마련을 두고 고심 중이다.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확산하고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에 가이드라인이 되는 자문사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관리감독할 법적근거 조차 마련되지 않으면서다.
업계에선 걱정이 많다. 과도한 규제로 자칫 이제 막 태동한 토종 의결권자문사들이 자리를 잡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ISS,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자문사들이 의결권 자문 시장을 독점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함께 나온다.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의결권 자문사들에 대한 규제안을 놓고 금융위원회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국내 자문사들의 이해상충 문제의 해결 방안과 전문성 제고 방안 등이 대표적인 안건으로 거론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내부 검토중인 사안이지만 아직 규제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선 한국ESG기준원(KCGS), 한국ESG연구소(옛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 3사가 주요 자문사로 자리잡았다.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국내 자문사들의 의견을 국민연금 등에서 필수적으로 검토 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점차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평가 대상 기업 관계자들과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의결권자문사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선 사업 방식에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상장사들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기관투자가들에 수수료를 받고 찬성·반대를 추천하고, 한편으로는 대상 회사들이 주총에서 유리한 컨설팅을 제공해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SM엔터도 지난해 경영권 분쟁 및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 의결권 자문사에 2억5000만원 가량을 컨설팅 비용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3사간 한계도 뚜렷하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한국거래소 산하 기관인 KCGS는 매년 거래소 등으로부터 40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영리 목적의 평가에서 자유롭다. 다만 "회원사의 심기를 거스른 안건 평가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불만이 행동주의펀드 등 기관들로부터 제기된다.
대신금융그룹은 2021년 그룹내 법인을 평가사업을 담당하는 한국ESG연구소와 기업에 대한 자문사업을 맡는 대신경제연구소로 나눠 이해상충을 철저히 막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관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두 법인이 여전히 일반법인으로 분류돼 서로 정보를 교류하거나 연계되더라도 이를 방지할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용역을 맡아 컨설팅을 맡은 기업들에게 상을 주기도 하는데 그런 곳에 돌연 반대 의견을 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라며 "민감한 안건을 앞둔 기업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컨설팅을 받아야할 상황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사들이 권한에 맞는 역량을 갖췄는 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금융위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자문업무에 대한 전문성 제고 방안도 동시에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가 주주총회에서 전담하는 대상 기업은 200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들이 고객들로부터 수령하는 수수료가 '기업당 10만원' 수준에 그칠 정도로 박리다매형 시장 구조가 이어지는 점이다. 전문인력들의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도 쉽지 않은 환경이란 지적이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자문을 맡는 한국ESG연구소와 대신경제연구소도 지난해 말 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선 금융위가 한 차례 입법안을 내 추진했던 의결권 자문사들의 신고제 전환 방안이 재시도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전문 인력 여부와 재무상황 등을 금융위에 신고하도록 하고 금융위는 공정성 등을 판단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이 골자다. 2018년 의원 입법으로 한차례 법제정이 시도됐지만 임기가 만료되면서 백지화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의결권 자문사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신용평가사와 유사한 수준의 더 강한 관리감독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현실성이 적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금융당국이 메스를 대기 어려울것이란 시각도 있다. 대부분 자문사들이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하는 상황에서 자칫 규제 강화로 영세한 규모의 국내 자문사들이 문을 닫으면 ISS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자문사들이 평가를 독점하는 현상이 짙어질 것이란 우려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일부 해외 평가사들은 한국에 사무소도 두지 않고 한국인 직원도 없이 해외에서 국내 기업을 평가하고 이 의견에 외국인 투자자 상당수가 동조하는 경향이 짙다"며 "국내 기업들의 거버넌스에 대한 주권 차원에서도 토종 자문사를 키우는 정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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