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는 이날 담화에서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 총리는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 마비”라고 했다. 그는 “(정부의 쌀 시장 격리 조치는) 시장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긴급한 상황에 한해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쌀이 남아도는데도 영구히 무조건 사들이는 것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무력화한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어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23만t 수준인 초과공급량이 2030년 63만t을 넘어서고 쌀값은 더 떨어져 17만원대 초반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영세 농업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재원이 사라지는 문제점도 거론했다. 한 총리는 “개정안에 따른 재정 부담은 연간 1조원 이상”이라며 “농업 경쟁력 강화와 청년 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욱 멀어진다”고 경고했다.
한 총리는 “자급률이 더 높은 쌀을 더 생산하는 것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합당한 결정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해외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밀, 콩 같은 작물의 국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국가 전체와 농민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부연했다.
한 총리는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난 정부에서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던 법안”이라며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혈세를 내는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실은 양곡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농심’에 직결되고 국회의장까지 중재한 법안을 행정부가 반대하는 결정은 쉽지 않다”며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법안들이 거론되는 건 작지 않은 부담”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은 다른 쟁점 법안들도 줄줄이 강행 처리한 후 행정부로 넘긴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과 의료법은 30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다음달엔 방송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노란봉투법’은 오는 4월 22일 이후 직회부 요건을 갖춘다. 모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안들이어서 정국 경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좌동욱/양길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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