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 회사가 어떻게…리바이스도 놀란 청바지 원단의 비밀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3-30 06:55   수정 2023-03-30 07:05


기모노를 만드는 회사였던 가이하라가 업종을 청바지 원단으로 바꾼 1970년은 섬유산업의 주도권이 한국과 같은 신흥국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그런데도 가이하라데님은 100년 넘게 터를 닦은 히로시마에 남았다. 지금도 태국 공장 한 곳을 제외하면 주력공장 4곳을 모두 히로시마현에 두고 있다. 680명의 근로자 가운데 태국인 근로자 3명을 제외하면 모두 지역민들이다.



가이하라데님은 어떻게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서의 생산을 고집하면서도 청바지 원단 시장 1위를 유지했을까. 가이하라 마모루 가이하라데님 사장은 "섬유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때 뛰어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저가의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대신 고급 원단을 만들었다"며 "양이나 단가보다 고객의 요구를 잘 맞추는게 다음 세대의 사업모델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가이하라데님에 따르면 청바지 원단을 만드는 자체는 실을 염색해서 건조하고, 건조한 실을 짠다는 점에서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가이하라데님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세계 최대 청바지 회사인 리바이스의 선택을 받으면서다.

리바이스가 전 세계의 데님 기업 가운데 가이하라를 택한 이유는 일관성이었다. 청바지 원단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수십 년간 똑같은 품질의 원단을 제때에 생산하는 업체는 드물다는 것이었다.



가이하라 마모루 사장은 199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리바이스의 최고경영자(CEO)와 면담했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가이하라데님의 '세일즈 포인트'는 무엇이냐"는 리바이스 CEO의 물음에 그는 "'릴라이어빌리티(reliability·신뢰성)'"라고 답했다.

가이하라 사장의 말처럼 가이하라데님은 지금도 40년 전 도입한 방직기로 40년 전과 똑같은 품질의 원단을 생산한다. 가이하라데님만의 상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박리다매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청바지 원단은 스프라이프와 같은 단순한 디자인 뿐이었다. 색깔도 다양하지 않았다. 생산 과정에서 색이 점점 옅어지는 갈색과 카키색은 청바지 원단으로 상품화하기 어렵다는게 당시 업계의 상식이었다.

가이하라는 갈색과 카키색은 물론 다양한 무늬의 데님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덕분에 유럽에서 청바지 유행이 시작한 1980년대 들어 디젤과 같은 유럽 브랜드들에도 원단을 납품할 수 있었다. 가이하라가 100년 가까이 염색한 기모노 직물을 생산하던 업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대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청바지는 덥고 무거운게 약점이다. 소비자들은 입기 편하고 관리가 쉬운 제품을 찾는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가이하라는 가볍고 잘 늘어나는 소재, 시원하고 잘 마르는 소재, 물이 안빠지는 소재 등 기능성 소재를 내놨다.

가이하라데님은 인구가 줄고 시장이 작아지는 일본에서 언제까지 섬유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가이하라 사장은 "대량생산을 포기한 대신 항상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며 "그럴 수 있는 한 일본에서 계속 데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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