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는 '생모'만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즉 앞으로 기혼 여성과 불륜관계로 아이를 낳더라도, 생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최근 가족관계등록법 46조·57조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에 따르면 혼외자의 출생신고 의무는 생모에게 있다. 57조는 생모와 불륜관계인 생부가 혼외자의 출생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생모가 소재불명이거나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한정된다고 규정한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기혼 여성과 불륜관계로 아이를 낳은 생부들과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다. 청구인들은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으로는 이렇게 출생한 아이를 여성의 법적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해 생부가 현실적으로 출생신고하기 어렵다며 헌재의 판단을 요청했다.
사안을 1년여간 심리한 헌재는 가족관계등록법이 혼외 관계로 출생한 아이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혼외자를 낳은 여성은 남편이 알게 될까 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국가는 출생신고권이 있긴 하지만 의무사항까지는 아니어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 침해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출생등록은 아동이 부모와 가족 등의 보호로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게 한다"며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출생 후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아동의 출생과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등록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이런 권리는 헌법 10조(존엄·가치·행복추구권)와 34조 1항(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36조 1항(가족생활의 보장) 등을 망라하는 독자적 기본권이며 자유로운 인격 실현을 보장하는 자유권적 성격과 건강한 성장·발달을 보장하는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고 판시했다.
다만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이 효력을 즉각 잃는 것은 아니다. 헌법불합치는 법안의 위헌성을 인정하지만, 즉각 무효로 만들지 않고,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가 정한 법 개정 시한은 2025년 5월31일이다.
또 헌재는 아이들의 헌법소원은 받아들였지만 가족관계등록법이 생부의 권리까지 침해한 것은 아니라며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생부들의 헌법소원은 기각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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