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롭스포츠코리아가 보유한 골프용품 브랜드는 크게 세 가지다. 젝시오와 클리블랜드 그리고 스릭슨. 그중 럭셔리 라인을 표방하는 젝시오는 국내 여성 클럽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웨지 전문 브랜드인 클리블랜드도 시장점유율 37.5%(2022년)를 차지할 정도로 잘나간다. 하지만 ‘젊은 골퍼’ 타깃의 스릭슨은 달랐다. 존재감이 미미했다.
홍순성 던롭스포츠코리아 대표는 스릭슨을 띄우기 위해 2020년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프로골프(KPGA)의 챌린지(2부) 투어 이름을 ‘스릭슨 투어’로 바꾸는 데 20억원(4년 계약)을 썼다. 코로나19가 기세등등했을 때다. 당연히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최근 스릭슨투어 1차전 대회장에서 만난 홍 대표는 “코리안투어(1부)도 아니고 2부 투어에 그런 돈을 쓴다는 게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나름대로 자신 있어서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자 홍 대표의 결단이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던롭의 자체 조사에서 100억원 넘는 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2부 투어에서 스릭슨 볼 평균 사용률은 40%대를 넘어섰다. 지난해까지 스릭슨과 볼 후원 계약을 맺은 선수만 392명이다. 후원이 이뤄지기 전 사용률은 5%대에 불과했다. 챔피언스투어와 아마추어까지 더하면 약 600명의 선수가 스릭슨 볼을 쓴다. 한 자릿수 점유율에 그쳤던 스릭슨 볼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10%를 넘어섰다.
홍 대표가 ‘스릭슨투어’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투어 소속 선수들의 골프공 사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유망주’들이 모여 있는 2부 투어를 통째로 후원하면서 선수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이들에게 스릭슨 공을 쓰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가 코리안투어에 스릭슨 공을 들고 올라가면 자연스레 점유율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른바 ‘언더독 마케팅’이다.
두 번째는 브랜드 정체성 확립이다. 태생부터 ‘투어 브랜드’였던 스릭슨은 선수들이 쓰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쌓아야 했는데 여자 투어는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대회를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는 챌린지 투어가 눈에 들어왔다. 홍 대표는 “투어 기반 브랜드로서 어떤 형태로든 투어가 계속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20개 대회 내내 투어밴을 상주시키고 운영 인력을 늘렸다. 1부 투어에서도 찾기 힘든 연습 레인지를 대회마다 마련했다. 홍 대표는 “지원을 늘리면서 예산의 두 배가 넘는 돈이 들어갔다”며 “하지만 이를 본 타 브랜드도 자극받은 듯 스릭슨투어에 뛰는 선수들을 위해 현장 지원을 늘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에 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릭슨의 활약 속에 던롭 국내 매출도 해마다 ‘역대 최대’를 경신하고 있다. 2019년 751억원이던 매출은 2021년 1131억원으로 불어났다. 영업이익은 2021년 168억원을 찍으며 사상 처음으로 1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던롭 관계자는 “코로나 영향으로 골프 시장 전체가 호황이던 것을 고려해도 가파른 상승세였다”며 “스릭슨이 큰 역할을 했다”고 귀띔했다.
홍 대표는 차세대 먹거리로 테니스와 배드민턴, 스쿼시, 탁구용품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던롭 제품은 이미 테니스 시장에선 ‘투어 볼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비교적 관심이 덜한 배드민턴과 스쿼시 등에도 제품 라인을 강화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각오다. 홍 대표는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몸담고 있어 언제든 유연하게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던롭의 장점”이라며 “골프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던롭이 1위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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