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성수기를 맞은 건설 현장이 하나둘 멈추고 있다. 따뜻한 날씨에 건설 속도를 높일 환경이 갖춰졌지만, 정작 재료인 시멘트가 부족한 탓이다.
31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상위 100위권 이내 중·대형사 건설 현장 154곳 가운데 63.6%에 달하는 98곳이 공사 지연·중단 등 차질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민간 현장은 112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2곳이 정상 가동되고 있지만, 공공 건설 현장은 42곳 가운데 90.4%에 달하는 38곳에서 공사가 멈추는 등의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건협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공공 A 건설 현장은 레미콘 92대 물량(550㎥)을 주문했지만, 절반이 넘는 310㎥를 공급받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 경기도 민간 B 건설 현장도 레미콘 50대 물량(300㎥)을 주문했지만 한 대도 공급받지 못해 공사를 멈춰야 했다. 레미콘은 정해진 양을 한 번에 부은 뒤 굳혀야 건물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다.
시멘트 업계는 탄소중립과 질소산화물 배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 설비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제조 설비(소성로)를 세우고 대기오염 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등 개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기적인 설비 보수도 더해졌다. 업계에서는 쌍용C&E, 한일시멘트, 아세아시멘트 등 7개 대형사의 소성로 35개 가운데 10개에서 공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재고량은 3월 기준 60만톤 내외다. 적정 재고량인 120만톤의 절반에 불과한 상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연탄 가격이 폭등하면서 시멘트 수급 대란이 벌어진 지난해 3월 65만톤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시멘트 업계는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늘었지만,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해 공급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한다.
국내 9개 시멘트업체를 회원사로 둔 시멘트 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시멘트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상반기 해외로 나가야 할 수출 물량 27만톤도 내수로 전환해 우선 공급하고 있으며, 예정됐던 생산라인의 보수 일정도 하반기로 연기해 공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 이후 콘크리트 강도 기준이 강화되며 레미콘에 들어가는 시멘트 사용량이 늘어난 것도 공급 부족 사태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통상 날씨가 추운 1, 2월에 재고를 넉넉하게 쌓아 두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따듯하고 밀린 공사도 많아 '당일 생산·당일 출하' 상황에 이를 정도여서 재고를 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멘트 협회는 4월부터 시멘트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협회는 "정기보수가 진행 중인 소성로는 3~4월 중으로 대부분 종료된다"며 "정기보수를 마친 소성로가 가동에 들어가면 시멘트 생산량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건설협회는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시멘트 공급 부족으로 인해 건설 현장이 중단·지연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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