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사진, 위원장은 대통령)은 “백화점식 대책 나열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지난해 214개에 달하는 저출산 사업을 절반 이하로 줄여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기획재정부에 예산 증액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저출산 사업에) 2005년부터 280조원의 예산을 썼다고 하지만 여기엔 군무원 인건비 인상처럼 저출산과 관련이 적은 사업까지 모두 포함돼 저출산 해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현금 지원은 저소득층에 집중하고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김 부위원장은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저출산위 상임위원으로 일했고 지난 1월 부위원장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이자 현직 대통령으론 7년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를 주재(3월 28일)한 것을 계기로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 부위원장을 만났다.
▷정부가 280조원의 예산을 썼는데도 출산율은 오히려 떨어진 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2005년부터 280조원 또는 그 이상의 예산을 썼다고 하는데 아동과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지출한 예산은 그보다 적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선 아동과 가족에게 직접 지출한 금액을 기준으로 저출산 예산을 잡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5% 정도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의 절반 수준에 그칩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쓴 것 같지만 저출산과 관련이 적은 예산이 많이 포함돼 있다 보니, 정작 꼭 필요한 사업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어려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지난해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된 214개 사업에는 산학협력선도사업이나 군무원 인건비 인상 같은 사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각각의 사업이 필요성은 있지만 저출산 문제와는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사업이 많다 보니 280조원의 저출산 예산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판단 자체를 못 하고 있습니다.”
▷대안으로 생각하는 게 있는지요.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 되는 정책만 솎아낼 생각입니다. 올 상반기 연구용역을 통해 214개의 저출산 대책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습니다. (3월 28일 저출산위 회의에서) 정부가 제시한 △돌봄·육아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건강 등 다섯 가지 항목별로 대책을 구분하고 여기에 안 맞는 정책은 과감히 제외할 것입니다. 추려진 사업에 대해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지 확실하게 평가하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재부에 예산 증액을 적극 요청하겠습니다.”
▷대통령 주재 저출산위 회의가 7년 만에 열렸습니다. 이번 회의가 이전 정부 때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 문제를 챙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어느 정부보다 대통령께서 저출산위 회의를 많이 주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점도 이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그동안 저출산위는 한 차례 큰 틀의 5년 단위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매년 연도별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번엔 소통을 통해 수요자가 원하는 정책을 실제 반영하고 실행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출산위 회의에서 나온 대책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맞벌이 부부도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젊은 부부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것으로 압니다. 그간 저소득층 위주로 하던 정책인데, 소득 기준을 완화해 맞벌이 가구에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소득 기준은 재정당국과 논의해 발표하겠습니다. (기존에 세 자녀 가구에 해주던) 공공주택 특별분양(특공)을 두 자녀 가구로 확대한 것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거 문제가 결혼과 출산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금 지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제안도 나옵니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도입한 영아수당, 양육수당, 아동수당, 부모급여, 지방자치단체별 수당 등 각종 현금 지원정책을 우선 점검해야 합니다. 효과를 평가하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포퓰리즘과 맹탕 사이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기본적으로 현금 지원은 저소득층에 집중하고,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출산율과 인구가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요.
“단기간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봅니다. 혼인 건수가 감소했기 때문에 당분간 출산율이 0.78명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 이상적인 자녀 수를 물어보면 대개 1.5~2명 정도입니다. 1명이 채 되지 않는 합계출산율(지난해 0.78명)과 큰 괴리가 있죠. 이 격차만 해도 작년에 태어난 아이(약 25만 명)의 절반입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어렵다면 이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봅니까.
“이민은 총인구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지 않고 있어요. 이민정책 관련 준비는 해야겠지만 당장 대책을 내놓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있어도 실제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책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사용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소기업 등에서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애로사항과 개선할 점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정부 차원에선 금융위원회, 기재부와 함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항목에 저출산 관련 항목을 더 구체적으로 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육아휴직 제도만 공시하게 돼 있는데 남녀 육아휴직 비율, 육아기 단축근무 도입 여부도 평가하도록 하는 방안입니다.”
정리=강진규/양길성 기자, 사진=강은구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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