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위기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던 1997년 11월 이후 시가총액 증가율 상위 일본 기업들이다. 정보기술(IT), 반도체 장비, 외식, 의류 등 업종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오너 기업이라는 점이다.
시가총액 증가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대 모터회사인 NIDEC(옛 일본전산)과 세계 최초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한 에자이 등 최근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회사는 하나같이 오너 기업이다.
일본 최대 대기업 미쓰비시의 이름을 단 기업들도 사명을 공유하는 느슨한 기업 연합일 뿐 지분으로 엮인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가 아니다.
뚜렷한 1대 주주가 없다 보니 일본 기업들의 사장은 주로 임원 출신이 돌아가며 맡는다. 임기제 사장은 확장보다 수성에 주력하기 마련이다. 과감한 사업재편을 통한 기술혁신(이노베이션)보다 사업 부문 간 조정자 역할에 더 충실하다.
일본 상장기업의 60%가 지금도 사용하는 중기 경영계획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래는 3~5년마다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의 디딤돌을 놓는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오늘날은 사장의 임기와 연동돼 단기 성과를 쥐어짜는 지표로 쓰이는 사례가 더 많다.
심정욱 교토산업대 교수가 3492개 기업의 1956~2017년 실적을 분석한 결과 가족 경영(오너) 기업의 총자산이익률(ROA)이 다른 형태의 기업을 줄곧 앞섰다. 2017년의 경우 가족 경영 기업의 평균 ROA가 5.25%인 반면 전문 경영인 기업은 4.77%였다. 버블(거품)경제 붕괴 등을 거치면서 일본도 오너 체제의 문제를 겪을 만큼 겪었다. 그런데도 오너 경영이 재평가받는 이유는 30년 장기침체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활기를 잃어버린 자국 기업들을 보면서 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경영인들이 보여준 ‘애니멀 스피릿(도전정신)’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는 것이다.
한국도 한 세대가 더 지나면 오너 경영의 시대가 저물 가능성이 높다. 경영자의 ‘야성’이 기업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오너 기업 재평가’ 현상에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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