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문제는 어느 기업이나 예외없이 고민하는 사안이다. 수많은 노동법 이슈 중에서도 특히 명확한 법리와 선례가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저성과자 관리 방안에 대해 항상 고심하고, 관련한 법원 판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매번 기업 인사·법무 담당자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최근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역량개발을 위해 실행하는 관리 프로그램(PIP·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에 대한 눈길 끄는 판결이 있었다. 은행의 후선역 제도상 직무범위가 적법하게 정해졌는지 문제된 판결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12. 22 선고 2021가합3309 판결. 상고하지 않아 2023년 2월 확정).
사안을 소개하면, 은행은 성과가 부진한 저성과자를 후선역으로 배치하여 업무평가에 따라 현업 복귀, 대기발령, 징계의 조치를 하는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 일환으로 후선역 수행 직무에 사회봉사활동을 둬서 길게는 3개월에 250시간까지 사회봉사활동을 하도록 권장했다. 그리고 사회봉사활동이 후선역 평가상 차지하는 비중을 50%로 가장 높게 정했다. 그로 인해 후선역으로 배치된 직원 A는 약 3년간 총 259회, 883시간이나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하였다.
이에 직원 A는 은행이 위법하게 비자발적 사회봉사활동을 강제했다는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했는데, 법원은 은행의 인사 재량권 남용을 인정하고 직원 손을 들어줬다.
요약하면 Δ은행이 후선역 직무범위에 원래 근로계약상 예정하지 않던 사회봉사활동을 포함시키고 그 시간, 평가 비중을 과도하게 높인 사실이 인정되는데 Δ이는 현업으로 복귀하거나 은행과 근로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직원을 사회봉사활동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이고 Δ그 결과 '근로계약에서 예정한 직무범위에 벗어난 비자발적인 사회봉사활동을 사실상 강제하는' '반사회적인' 위법조치라는 것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PIP제도에 특유한 후선역 제도를 다루며, 후선역 제도를 두는 금융기관도 사회봉사활동 등 그 직무 범위에 관한 취급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후선역 판결을 두고 가령 사회봉사활동을 직무 범위에 포함하는 후선역 제도는 일률적으로 위법하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일반화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법원이 PIP 제도를 바라보는 기본 입장, 즉, 그 도입에는 기업이 사용자로서 폭 넓은 재량을 가질지 몰라도, 구성과 설계에 관한 한 그러한 재량에 한계가 있고 실질적인 퇴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특히 Δ후선역 직원이 사회봉사활동 수행 여부나 방식을 스스로 정할 수 있고 다른 평가항목에 비하여 사회봉사활동을 수월하게 이행할 수 있는 점 Δ노사 합의로 후선역 직무 범위로 사회봉사활동 항목을 포함한 점 등 기업에 유리한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판단을 내린 점은 기업 입장에서는 되새길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2017년 PIP 제도상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무배치교육이 직접 업무수행 능력의 향상과 무관하거나(예:독서, 소감문 작성), 희망퇴직 등을 권유, 장려하는 효과가 있더라도(예:창업교육), 그 교육은 실질적인 퇴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지고, 2021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바가 있다(2017나59164 판결. 상고 기각으로 확정). 이 판결(편의상 참조 판결이라 한다)은, 위 소개한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언뜻 기업에 PIP 제도 설계상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 맥락을 같이 고려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오히려 참조 판결은 그 반대 취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PIP 제도 운영 결과 내려졌던 저성과 해고가 유효한지가 쟁점인데, 그 쟁점을 판단하면서 해당 교육은 (비록 문제 소지는 있지만) 시간·비중과 내용 및 편재가 현저히 부당하여 퇴직 강요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무 관련성이 없거나 희망퇴직을 권유, 장려하는 PIP상 교육 프로그램은 잠재적 문제가 있으므로, (해당 사안과 달리) 지나치게 시간·비중이 높거나 내용 및 편재 등에서 균형을 잃은 사안이라면 해고를 무효로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결국 두 판결을 종합하면, 법원은 PIP 제도의 구성과 설계에 있어 기업이 사용자로서 가진 재량의 한계를 지켰는지 유의하면서, 관련 사실(시간, 비중, 내용, 편재 등)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입장이 유지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PIP를 실행하고 있거나 장차 실행을 고려하는 기업은 ΔPIP 교육 프로그램상 업무성과 향상과 관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내용이 없는지 Δ대상자에게 원래 직무 범위와 동떨어진 업무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Δ평가 항목상 비중 배분이 저성과자 역량 평가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다시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되는대로 신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그러한 PIP 제도 구조와 설계상 문제가 이제는 직장 내 괴롭힘의 문제로 발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번 판결의 사안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도입된 2019년 이전의 후선역 제도가 대상이므로 문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실질적 퇴출 프로그램으로 설계·운영되는 PIP 제도에 관해서는 인사권 남용 내지 불법행위로 문제되는 것을 넘어 대상자들이 집단으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 경우 기업과 대표자 등의 과태료 책임, 노동청 진정에 뒤 이은 당국의 개선명령, 노사 관계의 동요, 기업 평판 악화가 문제되고 더욱 분쟁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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