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소자 만드는 '양자 팹', 정부가 기업에 빌려준다

입력 2023-04-04 17:25   수정 2023-04-05 01:01

정부가 기업과 연구기관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개방형 국가 양자 파운드리’ 구축에 나선다. 차세대 혁신 기술로 주목받는 양자 기술을 활용해 양자소자 실험과 공정 설계, 시제품 테스트 등을 도울 예정이다. 필요 기술과 비용이 막대한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국가가 마련해 기업·기관이 필요한 만큼 빌려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개방형 양자소자 팹 나온다
4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런 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하기로 하고 전문가와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개방형 양자 팹 허브’(가칭)를 중심으로 기능별로 특화한 중소 규모 양자 팹 랩(연구실)을 연계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르면 이달 열리는 제2회 양자기술 최고위 전략대화 회의에서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부터 양자기술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2031년까지 8년간 9960억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도 별도로 전개하고 있다.

양자소자는 양자의 물리학적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전자 부품을 뜻한다. 초미세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화학 분야 분석기기, 정밀 측정·탐사기기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대용량, 초고속, 저전력, 다기능 등을 구현할 수 있어 ‘꿈의 소자’로도 불린다.

양자소자 R&D를 위해선 분야별 특화 설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이를 마련하긴 쉽지 않다. 장비 하나의 가격이 낮게는 수억원에서 높게는 100억원 안팎에 달하기 때문이다. 상용화 시점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막대한 선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급한 대로 미국 일본 등에 양자소자 R&D를 위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어려워지는 추세다. 양자기술업계 한 관계자는 “전략기술 블록화로 각국의 자국 기업 우대가 두드러지면서 이용 순위가 점점 밀리는 상황”이라며 “기존엔 6개월이면 위탁 연구 결과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1년에서 1년 반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AI·빅데이터 인프라 시장↑
최근 IT업계에선 첨단 기술 인프라를 대규모로 구축해 외부 기업에 대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I 모델 개발과 운영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GPU는 AI 서비스를 키우는 ‘밭’에 해당한다. GPU가 많을수록 서비스를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GPU가 한 개뿐이라면 파라미터(매개변수)가 1750억 개인 AI 모델 GPT-3 훈련에 335년가량이 걸린다. 완성도 높은 AI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수천 개의 GPU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AI 신드롬을 일으킨 챗GPT는 엔비디아의 GPU A100 1만 개를 썼다. A100의 가격은 80기가바이트 기준 한 개에 약 2000만원에 달한다.

전문적인 인프라 대여 사업자도 생겼다. KT클라우드는 지난해부터 AI 인프라 대여 사업을 시작했다.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GPU 팜’을 조성해 다른 기업에 필요한 규모·시간만큼을 빌려준다. AI 연산에 쓰인 자원에만 과금하는 종량제 방식이다. 기업이 자체 AI 서버를 구축하거나 글로벌 빅테크의 클라우드와 패키지 형태로 서버를 구독할 때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KT 관계자는 “최근엔 KT가 개발 중인 기술의 내부 테스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는 지난달 말 슈퍼컴퓨터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소요되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데 착안한 행보다. GPU 3만2000개, 저장장치, 소프트웨어 등을 묶어 제공한다. 기업이 물리적 대형 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초거대 AI를 구축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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