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빅매치로 달아오르는 '미술 1번지' 삼청동

입력 2023-04-04 17:46   수정 2023-04-28 09:43


세계적인 미술관 큐레이터와 ‘큰손 컬렉터’는 2년에 한 번씩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아시아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인천공항에 내린 이들이 광주로 향하기 전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한국 최고 화랑이 밀집한 서울 삼청동이다.

오는 7일부터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삼청동은 ‘미술시장의 최전선’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그래서 언제나 미술 애호가로 붐빈다. 광주비엔날레가 삼청동 화랑가에만 현수막 광고를 붙인 이유다.

삼청동 갤러리도 해외 큰손이 속속 입국하는 지금이 작품을 팔 수 있는 좋은 기회란 걸 안다. 그래서 이때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미술관급 전시’를 준비한다. 국내 미술 애호가에겐 돈 한 푼 안 들이고 ‘눈 호강’할 수 있는 기회다. 상업 갤러리는 전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화창한 봄날, 삼청동 인근에서 둘러볼 만한 주요 전시를 관람 동선에 맞춰 정리했다.
(1) 국제갤러리, 칼더·이우환 개인전
‘삼청동 갤러리 투어’의 출발점으론 국제갤러리가 제격이다. 현대미술 거장인 알렉산더 칼더(1898~1976)와 이우환 화백(87)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서다. 유명하고 작품 값이 비싸다는 것 외에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배경지식 없이 작품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칼더가 아기 장난감으로 친숙한 ‘모빌’의 개념을 만들었다는 점, 이우환이 미니멀리즘과 동양 사상을 결합한 일본의 미술운동 ‘모노하’를 정립하는 등 이론가로도 이름을 날린 것 정도는 알고 보면 좋다.

작품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국제갤러리는 전시공간을 뜯어 고쳤다. 칼더 전시에서는 ‘구아바’ 등 대표작과 전시 구성이 어우러져 모빌의 다채로운 모양과 색채를 만끽할 수 있다. 국내에서 8년 만에 열리는 이우환 전시에서는 돌과 철판을 이용한 설치작품 ‘관계항’과 ‘다이얼로그’ 연작 드로잉 4점을 만날 수 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수준 높은 두 건의 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건 선물이나 다름없다. 둘 다 5월 28일까지 열린다.
(2) 페로탕 삼청, 호아킨 보스 개인전
페로탕 삼청에서는 호아킨 보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그가 한국에서 주목한 곳은 광장시장이다. 활기차게 짐을 옮기는 상인과 노점상 앞에 앉아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동감을 추상화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호아킨은 전시 개막 두어 달 전부터 갤러리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를 벽에 세운 뒤 바탕색을 넓게 칠하고, 색 덩어리를 손과 나이프로 긁고 밀어내며 다채로운 느낌의 추상화를 만들어냈다. 뭘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추상화인데도 “왠지 느낌이 좋다”며 찾아오는 관람객이 많다. 5월 26일까지.
(3) 갤러리현대, 사이먼 후지와라 개인전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출신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41)의 개인전도 들러볼 만한 전시다. 컬러풀한 전시 구성과 작품이 잘 어우러진다. 지하 전시장의 알록달록한 벽면과 카펫, 가벽은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건 작가가 만들어낸 곰돌이 캐릭터 ‘후’가 등장하는 ‘후 더 베어’ 연작이다. 피카소와 마티스 등 거장의 그림을 오마주한 작품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현대 문명에 대한 풍자를 의미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품과 전시장 모두 색감이 아름답고 사진이 잘 나와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다. 5월 21일까지.
(4) 아라리오뮤지엄·갤러리, 정강자·심래정 개인전
삼청동 길을 벗어나 15분 정도 공예박물관과 안국역을 따라 걷다 보면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과 아라리오갤러리가 나온다. 뮤지엄에서는 여성 아방가르드 작가 정강자(1942∼2017)의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가 열리고 있다.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작가로, 오는 9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전시에도 작품이 나온다.

그 옆 갤러리에서는 촉망받는 작가인 심래정(40)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잠을 소재로 제작한 회화·영상 등 작품 15점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 전시는 9월 30일까지, 갤러리 전시는 5월 13일까지 열린다.
(5) 선화랑, 심영철 개인전
인사동 선화랑에서는 심영철 작가(66)의 설치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 1~4층 전관을 모두 사용한다. 작가가 1993년부터 줄곧 해온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의 결정판을 만날 수 있다. 벚꽃을 소재로 한 1층 ‘꽃비 정원’이 특히 인상적이다. 4월 2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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