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꽤 먼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내게는 예술도 그랬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논문을 쓰던 유학 시절,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난데없이 오페라와 연극이 또 그렇게 생각날 수 없었다. 평소에는 듣지 않는 아리아를 찾아 들으며 길고도 고독했던,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이겨내곤 했다. 마치 훈련받던 시절 초코파이가 내 몸 안 어딘가로, 마치 자기 자리인 양 들어와 나를 위로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 자신을 거절할 필요도 부인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나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용인할 수 있는 범위 속에서, 있어야 할 시간에, 있어야 할 장소에 있는 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나의 거부할 수 없는 선한 욕구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순수를 향한 인간 본연의 체성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를 둘러싼 복잡한 치장을 덜어낸다.
계획, 다짐, 약속, 목표, 성공, 명예…. 다 좋은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순수와 단순과 멈춤의 순간만큼 나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이를 구태여 거절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향한 해갈의 욕망인 동시에,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고 있는 이 물질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우리의 존립을 위해 분명히 존재하는 ‘놀라운 상상력의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성취된다”고 했던가.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우리는 때로 삶에서 불필요한 복잡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교육기관이라면 더더욱, 젊은이들이 ‘쏟아져 넘나드는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말로 복잡한 세상이다. 말도 많고 논리도 참 많지만, 잠시 멈춰 정말로 ‘단순한 나’로 돌아가는 시간, 순수를 추구하는 순간을 만끽해보자. 내 앞의 그대가 단지 나와 1%만 다를 뿐 나머지 99%는 동질감을 느끼며 어우러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정에 흩날리는 꽃잎을 모든 이가 아쉬워하며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멈출 줄 아는 존재다. 거기서부터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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