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조 넘는 혈세 투입, 재정 부담…쌀 과잉생산 부추겨 농업경쟁력 저하

입력 2023-04-04 18:21   수정 2023-04-05 01:21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 법이 세금만 낭비하고 정작 농업·농촌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남는 쌀을 강제로 매입할 경우 공급과잉을 고착화해 오히려 쌀값이 떨어지고 청년농 육성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어려워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부가 4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기로 결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의무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법이 정부의 농정 방향과 정반대란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 법이 담고 있는 ‘의무매입’ 조항이 만성적인 쌀 공급과잉을 심화해 쌀값 하락, 세금 낭비 등 문제를 파생시킬 것으로 봤다. 초과 공급이 늘면서 이를 매입하고 저장하는 데 필요한 예산도 연평균 5000억원 안팎에서 2030년 1조4000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이 법이 식량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21년 기준 44.4%에 불과하지만 쌀 자급률은 90~100%다. 반면 밀은 1%대, 콩은 24% 수준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의무매입은) 농업인들이 계속 쌀 생산에 머무르게 해 정작 수입에 의존하는 밀과 콩 등 주요 식량작물 생산을 늘리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쌀 이외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곡법이 통과되면 다른 품목에서 비슷한 요구가 있을 때 반대할 근거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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