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글로벌 은행위기를 계기로 갑자기 안전자산이라도 된 걸까. 미국 나스닥100지수와 S&P500지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상승세를 이어가자 이 같은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 사태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안적 성격인 비트코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규 투자자 유입이 제한적인 데다 거래량은 10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랠리가 일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디지털 금’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투자자 불신이 크고 규제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는 시각이다.
상승세 자체도 놀랍지만 더 주목받는 건 최근 들어 글로벌 주가와 탈동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금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서 이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헤지 수단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나온다. 비트코인과 S&P500지수, 금의 상관계수를 보면 이 같은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 0에 가까울수록 탈동조화로 볼 수 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인 카이코에 따르면 비트코인과 S&P500, 나스닥100의 상관계수는 각각 0.3 안팎으로 이달 들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금과의 상관계수는 -0.2에서 0.3으로 반전됐다. 암호화폐 로보어드바이저를 운영하는 업라이즈의 김두언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 경기 침체가 현실화된 국면에서 전통 자산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만으로 리스크 분산 효과를 충분히 얻기 어렵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며 “디지털 자산 등 대체자산을 활용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도 적극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이번 은행위기를 계기로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뿐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확장하고 있다”고했다.
은행위기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암호화폐 관련 업체들 역시 은행에 법인 계좌를 개설하고 고유 자금뿐 아니라 투자자로부터 위탁받은 자금을 넣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시가총액에 상응하는 준비금을 넣어둘 은행 계좌가 반드시 필요하다. 파산한 SVB에 준비금 30%를 넣어뒀던 서클이 대표적이다. 서클이 SVB에 물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때 1달러 페깅이 0.88달러 선까지 무너지기도 했다. USDC를 담보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DAI도 0.9달러로 내려앉았다. SVB 사태의 전조 현상이었던 실버게이트은행은 전체 예치금의 70%가 암호화폐거래소, 98%가 암호화폐 관련 업체들의 자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버게이트은행이 폐쇄될 당시 암호화폐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로 비트코인이 10% 가까이 급락했다. 암호화폐 관련 예금 비중이 20%대인 시그니처뱅크도 3일 뒤 폐쇄됐다. SVB에도 아발란체(160만달러)와 리플랩스, 코인베이스가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은행위기가 암호화폐와 무관치 않다는 근거로 꼽힌다.
코빗도 “장기 기관투자가들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암호화폐업계의 벤처캐피털(VC) 투자 유치 규모도 1월까지 계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글로벌 코인 산업의 성장 속도 역시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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