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가 챗GPT에 이어 GPT4.0으로 초거대 인공지능(AI)을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윤리성·책임성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구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쟁 기업이 눈앞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는 판국에 윤리성·책임성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11월 말 챗GPT를 공개한 타이밍은 아마도 시장의 반응 등을 미리 알아보는 치밀한 내부 실험 끝에 잡혔을 것이다. 초거대 AI 모델의 기술적 한계가 있지만 활용 가능성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선공개 후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줄여나가는 전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이 이런 전략을 감행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소 6개월 동안 GPT4.0보다 강력한 AI 훈련을 중단하자.” 전문가 1000명의 서명으로 ‘퓨처 오브 라이프 인스티튜트(Future of Life Institute)’ 사이트에 공개된 제안이다. 참여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정작 이들부터 이 제안의 실현 가능성을 믿을까 싶다. 오픈AI의 기술 공개 중지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들이 말하는 ‘오픈(open)’이 공짜(free)도, 자유(free)도 아님을 보여준다. 오로지 내게 이익이 될 때까지만의 오픈이다. 오픈의 무서운 진실이다.
그렇다면 초거대 AI 시장은 결국 미국 빅테크의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네트워크 외부성과 수확체증 특성이 승자독식을 낳는다는 이론보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언제 또 판을 뒤집을 파괴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시장경제의 역동성 때문만이 아니다. 승자독식을 막는 인위적 장애요인도 그중 하나다.
당장 미·중 충돌만 해도 그렇다. 초거대 AI에서 중국은 미국과 끝까지 경쟁할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에 중국이 자국의 파운데이션 모델로 대항하는 게 그렇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독자 검색엔진 시장을 갖춘 한국 역시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어권이 영어권과 비교가 되느냐고 반문하지만, 미·중 충돌로 오히려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동맹국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중국이 제1 무역국인 나라는 그보다 많다. 미·중 충돌로 고민하는, 그러나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받고 싶지 않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중동 유럽 등 제3의 초거대 AI 시장으로 한국이 진출하지 말란 법도 없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의 버티컬 솔루션 쪽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장이다. 밖에서 부러워하는 포트폴리오를 갖춘 제조업의 인더스트리얼 AI와 유저의 잠재적 니즈를 겨냥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바로 그렇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선전할 수 있는 분야다.
진화는 ‘스케일업’을 통해 성능을 높이는 축으로만 달릴 수 없다. 비용 제약, 즉 에너지 효율성은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또 다른 축이다. 초거대 AI에서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반도체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미국 쪽과 중국 간의 AI 경쟁 사이에서 전략적 존재성을 보유한 AI 중요국이 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기업이 아니다. 다시 앞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초거대 AI 모델의 기술적 한계가 있지만 활용 가능성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 때 국내에서는 기업이 먼저 공개하고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줄여나가는 전략을 취할 수 있는가. 이로 인해 마땅히 감수해야 할 기술과 시장 리스크야 당연히 기업의 몫이겠지만, 문제는 덤으로 따라붙는 더 큰 불확실성 리스크다. 세상에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는 없다. 문제가 있다고 서비스를 바로 중단하고 기업을 제재하는 환경에서는 퍼스트 무버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윤리성·책임성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것이 공개의 자유, 개선의 기회를 규제하면 혁신은 봉쇄된다. 정부가 초거대 AI 경쟁력 방안을 내놓는다지만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 헛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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