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 2관. 오후 7시가 되자 젊은 연인부터 머리 희끗한 노년 부부까지 수많은 커플이 줄지어 들어섰다. 432석짜리 대극장인데도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스크린을 채운 영상은 ‘에어’ 같은 할리우드 영화도, ‘파벨만스’처럼 작품성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앵그르의 ‘주피터와 테티스’ 등 거장들의 명화와 조각품 사진이었다.
이날 관객이 찾은 프로그램은 메가박스가 진행하는 ‘시네 도슨트’ 중 미술사학자 안현배가 설명하는 ‘미술 작품 속 그리스 신화’였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시네 도슨트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웬만하면 매진된다”며 “프로그램을 더 늘릴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 순수 미술 등 소위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영화관이 예술 강연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백화점 문화강좌와 각종 강연 프로그램에서도 고급 문화예술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계에선 “국민소득이 증가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관련 수요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을 수강한 60대 관객은 “3년 전 유럽여행 때 찾은 박물관에선 사람에 치여 제대로 명화들을 못 봤다”며 “오늘 큼지막한 스크린에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지니 실물을 볼 때보다 감동이 훨씬 더 컸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영화관의 주요 관객층은 20~30대인데, 시네 도슨트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다”며 “시네 도슨트가 메가박스 고객 저변을 넓히는 효과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CGV는 미술과 클래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콘서트&다이닝’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예술, 빛의 식탁’도 이 프로그램 중 하나다. 빛을 사랑한 화가 모네, 고흐, 렘브란트의 그림을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달빛을 음으로 표현해낸 작곡가 드뷔시의 음악을 첼리스트 윤지원의 라이브 연주로 들려줬다. 여기에 빛을 테마로 한 다양한 음식도 내놓았다. “빛을 주제로 먹고, 듣고, 보는 걸 한데 담았다”는 설명이다. CGV는 오는 16일에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 화가들이 그린 명화를 감상하며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아트&다이닝’ 빈 편을 선보인다.
현대백화점은 올 들어 미술 프로그램을 작년보다 두 배가량 늘렸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관장을 지낸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진행하는 ‘미술관 100배 즐기기’ 등 개설과 동시에 마감되는 인기 프로그램도 여럿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클래식과 미술을 배우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온라인 강의도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은 시대별 미술사를 설명해 주는 ‘허세미술관 iAn의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 도슨트의 이야기를 담은 ‘10년차 전시해설가 한이준이 알려주는 도슨트의 세계’, 아트테크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아트 전문 컬렉터가 알려주는 미술품 재테크의 모든 것’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재테크와 부업 강연이 중심인 이 플랫폼에서 미술 비중은 계속 늘어 지금은 25%에 이른다.
서수민 클래스101 매니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예술 러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이선아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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