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중반, 세계는 그야말로 ‘격랑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대전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의 후폭풍을 겪어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여성에겐 더 가혹한 시기였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 전쟁까지 겹쳐 여성이 자기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건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 스위스의 하이디 부허(1926~1993)와 한국의 김윤신(1935~)이 바로 그런 예술가들이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여성 예술가의 개인전이 지금 각각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와 남현동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두 여성 작가가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다. 한쪽은 단단한 재료로, 다른 한쪽은 말랑말랑한 재료로…. 그러나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섰다는 것이다.
나무·돌 찾아 전 세계 누빈 조각가
“강원 원산에서 태어나 해방 때 38선을 건넜어. 맨몸으로 강을 건너고, 수용소도 가보고 별일을 다 겪었지.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무서운 게 없어졌어. ‘내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데, 죽는 날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뿐이었지. 대학생 때도 학기 중이건 방학 중이건 매일같이 나와서 작업했어. 오죽하면 한묵 선생이 나를 ‘극성쟁이’라고 불렀을까. 하하.”
전쟁 통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김윤신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재료’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원동력이 됐다. ‘여자는 결혼해서 남편 내조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를 특히 매료시킨 건 딱딱하기 그지없는 나무와 돌. 1984년엔 단단한 나무를 찾아 혈혈단신 아르헨티나로 향했고, 1988년부터는 다이아몬드만큼 단단한 돌인 ‘오닉스’를 쫓아 멕시코와 브라질에 터를 잡았다.
“아르헨티나에선 햇빛이 강해서 그런지 나무가 엄청나게 딱딱해. 전기톱을 들이밀면 ‘쑥’ 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무가 톱을 튕겨낼 정도야. 나무 조각이 자칫 목 쪽으로 날아오면 그대로 끝이야. 그래서 작업을 할 땐 온 힘을 다해서 집중해야 해. 아직도 무섭지. 그래도 뭐, 어쩌겠어. 계속 해야지.”
88세의 나이에 직접 전기톱을 들고 만든 신작도 있다. 2층과 야외에 설치된 형광색 목조각이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김윤신이 고향의 칠흑 같은 밤하늘을 수놓던 별을 떠올리며 나무조각에 새겨 넣은 작품이다. 그는 요즘도 매일 전기톱을 들고 목장갑을 낀다. 야외 작업이 많아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톱질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여전사를 떠오르게 한다. 국내 여성 조각가의 막을 올린 그에게 남은 목표는 뭘까.
“예전엔 미대 나오고도 아무 것도 못하는 여성이 너무 많았어.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앞으로 죽는 날까지 작품을 만들고, 그 안에 담긴 내 정신을 수많은 ‘딸래미 제자’에게 남겨주는 것, 그게 내 목표야.” 전시는 5월 7일까지다.
부드러운 재료로 사회에 저항
김윤신이 딱딱한 재료를 내세웠다면, 스위스 출신 설치미술가 부허는 반대로 부드러운 재료로 사회에 저항했다. 부허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개발한 ‘스키닝(skinning)’ 기법부터 알아야 한다. 딱딱한 바닥과 벽에 액체로 된 라텍스를 바른 뒤 마르면 한 겹씩 벗겨내는 기법이다. 마치 공간에 말랑말랑한 피부를 붙인 후 이를 벗겨내는 듯하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부허의 개인전 제목이 ‘공간은 피막, 피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허는 스키닝 기법을 통해 서재 등 남성의 공간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1979)이 그렇다. 부허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서재를 2년에 걸쳐 스키닝한 후 46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벽에 걸었다. 권위적인 공간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서재는 남성,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린 것이다.
높이 3m, 너비 5m의 거대한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1988)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지닌 질병을 히스테리(신경증)로 치부하고 정신병원에 가뒀던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을 스키닝해 전시장에 옮겨왔다. 이런 부허의 작품은 당시 무척 보수적이던 스위스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부허의 아들 인디고는 “스위스는 1971년이 돼서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될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곳”이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부허의 ‘말랑말랑한 예술세계’가 깨부순 건 남성중심적 관념뿐만이 아니다. 그는 조각에 대한 고정관념도 깼다. 1970년대에 선보인 ‘입을 수 있는 조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대리석, 나무, 청동 등 딱딱한 조각과 달리 부드러운 스티로폼으로 만들어 누구나 작품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선 부허의 작품을 복제해 관람객이 입어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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