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의 판매량을 좌우하는 큰 요인은 정부 보조금이다. 보조금을 동원한 전기차 확대 전략은 주요 선진국에서 보편적이다. 한국에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시·도)의 보조금이 만만찮다. 테슬라의 약진에도 보조금은 작지 않은 변수였다. 2018년 1493대였던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량이 2022년 5만8028대로 급증한 것 역시 현지 보조금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엄격한 배터리 원산지 규정에 따라 이 보조금이 끊길 사정이 되면서 현대차는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과 각종 지원 혜택이 적지 않다. 그에 따른 질시와 불만도 있다. 생산·공급이 초기 단계를 지난 만큼 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기차의 보조금과 혜택을 적극 줄일 상황이 된 건가.
세금 면제도 적지 않다. 2020년 7월 이후 출고 차량에 대해 개별소비세와 취득세를 각각 300만원, 140만원 깎아준다. 전기차의 환경친화적 특성 때문이라면 왜 신차만 깎아주고 중고차엔 이 혜택이 없나. 중고 전기차는 친환경 요인이 없나. 자동차세도 전통적인 내연기관차의 경우 지방교육세까지 추가돼 배기량에 비례해 적지 않게 부과되지만 전기차는 훨씬 적다. 내연기관차가 40만원 안팎의 자동차세를 내는 반면 비영업용 개인 승용 전기차는 10만원의 자동차세에 지방교육세 30%를 추가해도 13만원에 그친다. 세금은 아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 50% 할인에 공용주차장 이용요금도 50% 깎아준다. 공공에서 이렇게 적극적 우대 정책을 펴니 쇼핑시설 등 민간 부분에서도 따라가며 주차 요금을 할인해준다. 서울의 남산터널과 부산의 광안대교 같은 특급 요지의 교통시설에서는 통행료를 아예 면제하고 있다. 지하철 환승주차장 3시간 면제 및 80% 할인, 공공기관 청사 주차장 전용 주차면 이용 같은 혜택도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유도하려는 정책 목표·취지는 좋다. 하지만 이제 전기차 보급이 시장원리에 따라 탄력을 받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연료비도 싸다. 정비 비용도 적어 정책적 혜택이 없어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경제·산업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전기차는 단순히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직접 쓰지 않는 차원을 넘어 자율주행차 개념과 병립돼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른 문명의 이기다. 자율주행 수준에 따라 한 대의 자동차에 반도체 칩이 수백 개, 수천 개씩 들어간다. 자율주행 프로그램은 인공지능(AI) 기술과 첨단 카메라 및 정보처리 기술이 필요한 첨단산업이다. 세계가 ‘모빌리티 혁명’에 나서면서 국가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전기차·자율차를 내세운 미래 기술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수출과 일자리 등으로 한국 산업에서 자동차 비중이 얼마나 큰가. 미국·유럽연합(EU) 등이 모두 전기차 시대로 급속 이행하고 있는 판에 한국만 내연기관차에 매달리고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
산업 생태계가 새로 짜이는 자율주행과 친환경 시대에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283만 대로 잡고 있다. 오히려 보조금을 늘려 이보다 보급이 더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을 확 늘리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면 자동차 수출 증대 이상으로 기술 선점과 새로운 자동차 생태계 구축 주도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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