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지금 '윤이월' 지나는 중이죠

입력 2023-04-10 10:00   수정 2023-05-05 00:01

절기상으론 청명(淸明·4월 5일)을 지나 어느새 곡우(穀雨·4월 20일)를 향해 가고 있다. ‘곡식 곡(穀), 비 우(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이롭게 한다는 데서 붙은 말이다. 못자리를 준비하는 등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는 때다. 하지만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도 2월이다. ‘윤달’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평년 같으면 지금쯤 음력 3월은 돼야 하는데, 올해는 음력 2월이 4월 중하순까지 이어진다.
달력 계절-실제 계절 맞추려는 공달
‘윤달(閏-)’은 살아가면서 자주 접하는 생활단어다.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천체 현상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달은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을 일치시키기 위해 끼워넣는 달이다. 양력과 음력에 다 있다. 우리가 통상 쓰는 양력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 365일로 정한 역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365.25일 정도 된다. 나머지 0.25일을 모으면 4년마다 하루가 생긴다.

태양력에서는 그 하루를 2월에 끼워 넣어 28일이 아니라 29일로 만든다. 이렇게 추가한 날을 ‘윤일’ 또는 ‘윤날’이라고 한다. 양력에서는 4년에 한 번, 2월이 윤달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양력을 1896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당시 정한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가 건양(建陽·1896~1897)인데, 이는 태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태양력 제도의 시행이 국가적 개혁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윤달 또는 윤날이 든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한다. 윤년에 대응하는 말, 즉 윤년이 아닌 해는 ‘평년(平年)’이라고 부른다. 내년, 2024년 2월이 양력으로 4년에 한 번 오는 윤년 윤달이다. 그러니 내년 2월 29일 태어나는 아기는 안타깝지만 생일을 4년에 한 번 맞게 되는 셈이다. 그게 아쉬워 평년엔 2월 마지막 날인 28일에 생일을 치르기도 한다. 또는 음력으로 날짜를 따져 생일을 쇠어도 그만이다.
공달·덤달·군달…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음력에서의 윤년 윤달은 다르게 정해진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약 29.5일)을 측정해 만든 역법이다. 그래서 음력에선 한 달이 29일 또는 30일이다. 이렇게 1년 열두 달이 지나면 354일이 된다. 태양력의 365일에 비해 11일 정도 모자란다. 그대로 놔두면 몇 년만 지나도 달력 날짜와 실제 계절이 크게 차이 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2년 또는 3년에 한 번 윤달을 둬 태양력 날짜를 맞춘다.

음력 윤달은 이렇게 평년의 달에 계절을 맞추기 위해 한 번 더 얹어주는 달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달(空-), 덤달, 군달, 썩은달, 여벌달, 가웃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 중 표준어로 사전에 오른 말은 윤달과 공달뿐이다. 나머지는 비표준으로 분류됐다. 이는 고유어 계열의 단어보다 한자어 계열 단어가 더 널리 쓰이면 한자어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표준어 규정 3장 2절 22항). ‘윤달’이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고유어인 ‘군달’을 밀어내고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참고로 ‘총각무(總角-)’가 이런 방식으로 표준어 대접을 받게 된 대표적 사례다. 한자어가 살아 있는 ‘총각무’는 고유어끼리 어울린 ‘알타리무’와 경쟁관계였다. 하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일상에서 알타리무보다 총각무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아지자 알타리무는 자연스럽게 사전에서 밀려났다. ‘총각김치-알타리김치’ 중에서 총각김치만 표준어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올해는 음력 2월이 한 번 더 있다. 새로 추가된 음력 2월을 ‘윤이월’이라고 한다. 양력 3월 22일~4월 19일이 윤이월에 해당한다. 윤달이 든 해의, 윤달 앞에 있는 달을 ‘원달(元-)’이라고 부른다. 양력 2월 20일~3월 21일이 원달인 음력 2월이었다.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일상에선 ‘평달’이란 말도 많이 쓴다. 음력 윤달생은 매년 윤달이 있는 게 아니므로 대개 평년엔 원달의 날짜를 따져 생일날을 맞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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