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산업 경기가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여파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조업으로 번지는 위기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 주요지표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경기는 작년 3월 정점을 찍은 뒤 하반기부터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KDI 측은 "올해 2월 반도체 산업 지표 다수가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사한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고 했다.올해 2월 반도체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41.8% 감소했다. 2001년 7월(-42.3%), 2008년 12월(-47.2%)과 유사한 감소 폭이다. 가동률지수(계절조정 기준)도 직전 정점 대비 49.1% 하락하면서 2001년 7월(-44.7%), 2008년 12월(-48.0%)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재고지수를 출하지수로 나눈 재고율은 254.2를 기록하며 2001년 7월(247.6), 2008년 12월(204.6)의 수준을 웃돌았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18.9%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꼽힌다. KDI는 이런 반도체 산업의 경기 하락이 국내 경기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3월 한국의 수출은 551억 달러로 전년 동기(638억 달러)보다 13.6% 급감했다. 감소율이 올해 2월(-7.5%)보다 확대되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64.2% 급증했지만, 반도체 수출이 큰 폭의 감소율(-34.5%)을 기록한 영향이 크다. 올해 1분기(1~3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0% 감소하면서 전체 수출액 감소(-12.6%)에 ?7.9%포인트가량 기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2월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은 68.4%로 전달(70.8%)보다 2.4%포인트 하락했다. 재고율(120.8%→120.1%)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위축됐다는 평가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용 둔화 흐름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15~29세 고용률은 46.0%로 전년 동기(46.5%)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6.2%에서 6.4%로 상승했다.
"반도체는 우리의 생명줄"
업계의 이목은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올해 1분기 연결 기준으로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잠정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전년 동기보다 95.7% 급감한 것으로,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 미만을 기록한 것은 2009년 1분기 이후 14년만이다. 매출은 63조원으로 전년 1분기보다 19% 감소했다.그동안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던 삼성전자는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며 사실상 감산을 인정했다. 삼성전자가 감산을 공식화한 것은 1998년 이후 25년 만이다.
일반적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가 부진해도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삼성전자가 감산에 나서면 그만큼 글로벌 공급량이 감소하는 만큼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정부도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반도체 산업을 디스플레이, 차세대 전지(배터리)와 함께 3대 주력 기술로 정하고 외국 기업들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해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100가지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데 쌀을 뛰어넘어 생명줄과 같은 산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추 부총리는 "반도체 없이는 우리 경제·산업이 돌아갈 수 없다"며 "정부도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산업을 위해 반도체 초격차를 확보해 나가는 데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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