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도시광산'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휴대폰, PC 등 버려지는 전자기기에서 금속 자원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산업을 뜻합니다. 여전히 쓸만한 중고 제품은 '리퍼비시'(미세한 흠집 등이 있는 제품을 보수·재포장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로 되살아나기도 하죠. 둘 다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안입니다. 이런 사업에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중고 전자기기 구독 서비스 '폰고'를 운영하는 피에로컴퍼니 얘기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고 있는 박민진 피에로컴퍼니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리퍼비시 기기 구독 서비스'라는 말에 중고 전자기기를 싸게 대여해주나 싶었다. 그런데 환경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쓸 만한 휴대폰이 너무 많이 버려지고 있잖아요. 조금만 고치면 새 상품 같은 것도 적지 않고, 휴대폰 같은 건 신제품 가격도 비싸잖아요. 월 1만~3만원대로 휴대폰과 통신비까지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박민진 피에로컴퍼니 대표는 "폰고는 휴대폰뿐만 아니라 태블릿PC, 노트북PC 등 중고 제품을 판매하거나 장기간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알뜰폰 업체(이지모바일)와 협력해 다양한 통신 결합 상품도 내놨다"고 했다.
박 대표가 구독 서비스에 초점을 두는 이유는 뭘까. "전자기기가 생애 주기를 다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희 비전은 첫 번째가 자원 선순환을 이뤄내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많은 사람이 중고 기기를 구매해 쓰게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저희 서비스에 신뢰가 생긴다면 환경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도 거부감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럴싸하게 친환경으로 포장한 '그린 워싱'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전자기기 중고 시장을 활성화해 환경 문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박 대표는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캐나다에서 유명한 아우터(캐나다구스 등) 중고품을 구매해 깨끗하게 재포장한 뒤 한국에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는 아우터들을 판매했어요. 사실 이때부터 중고 사업을 한 셈이죠."
피에로컴퍼니란 이름은 박 대표가 대학 시절 창업했던 자전거 회사 브랜드이기도 하다. "피에로는 겉은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노력잖아요. 피에로가 프랑스어인데, 영어와 불어 둘 다 쓰는 캐나다 특징을 반영한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박 대표는 토론토 온타리오예술디자인대(OCAD)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약 15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끝내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국에 왔다.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다시 창업을 준비했죠. 어릴 적부터 사업을 하긴 했지만 경영학을 공부한 적은 없었거든요."
2020년 피에로컴퍼니를 세우고, 처음엔 아이폰 등을 고쳐주는 수리점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사업을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수리점들과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밥그릇을 뺏어간다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중고 전자기기 구독 서비스였다.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사업이었고, 수리점들을 협력사로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Q. 폰고가 다른 중고 제품 플랫폼과 차별화한 전략이 있을까요.
A. 저희는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등의 중고 제품을 리퍼비시라는 절차를 거쳐 새 상품 수준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상태가 좋은 제품들은 저희가 개인정보를 삭제하고 세척만 해서 리패키징해 출고하고 있습니다.
Q. 이런 아이템을 생각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A. 제가 어렸을 때부터 중고 기기를 자주 썼던 기억이 있어요. 형이 쓴 제품을 물려받아 쓰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고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나중에 경제력이 있을 때도 새것보다는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전자기기 중고 시장이 좀 문제가 있는 거 같더라고요. 제대로 검수도 안 되는 거 같았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걸 비즈니스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Q. 피에로컴퍼니가 사업 아이템을 변경한 건 언제쯤인가요.
A. 저희가 원래는 완전 다른 서비스를 하다가 피벗(사업 전환)을 한 건데요. 처음엔 휴대폰 고치는 업체들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쉽지 않았죠. 다행히 당시 제휴 관계를 맺었던 약 500곳의 수리업체들이 지금 저희 서비스의 바탕이 됐죠. 리퍼비시 제품을 렌털하는 서비스는 작년 6월 정도에 시범으로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9월 정도부터 사업을 펼쳤죠.
Q. 주로 어떤 브랜드 제품을 서비스하시나요.
A. 수리점들마다 가장 잘 다루는 품목이 조금씩 다른데, 일반적으로 애플(아이폰)과 삼성(갤럭시) 제품을 많이 다루죠. 중요한 건 저희가 무상 보증을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최소 1년은 보장하고 있죠. 그래서 검수를 잘해야 해요. 검수 과정을 거쳐서 새 제품과 동일하게 무상 보증이 제공되는 인증된 중고 기기라는 점을 강조하죠.
Q. 가격도 좀 싸겠네요.
A. 물론 기기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신 기종으로 말씀드리면 새 제품에 비해 20~30% 정도 저렴하고요. 좀 철이 지난 상품은 50~60%까지 저렴합니다. 가격은 싼데 품질이나 성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요즘 계속 환율도 오르고, 원자재비도 오르다 보니까 전자기기 출고가도 계속 올라가고 있죠. 휴대폰 새 상품이 비싸게는 200만원까지도 하잖아요.
Q. 기기 구독 서비스 가격은 얼마나 되나요?
A. 한 달에 9900원부터 시작합니다. 아이패드 9세대가 9900원이죠. 저희가 스마트폰은 알뜰폰 업체랑 제휴해서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요. 코드모바일(이지모바일)과 함께 한 달에 휴대폰 기기 포함해서 1만~3만원대 상품들을 내놨습니다. 3만원대 요금제는 데이터도 맘껏 쓸 수 있고요. 저희는 약정도 없어요.
Q. 중고 판매보다는 구독 서비스에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요.
A. 저희는 한 번 판매하고 끝이 아니라 계속 유지 보수를 해주고 고객들이 제품을 쓰고 반납을 했을 때 그것을 또 다른 상품으로 대체해 드릴 수 있는 서비스를 지향합니다. 궁극적으로 저희가 해결하고자 하는 것 중에는 환경 문제가 있거든요.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자 폐기물들이 지금은 전혀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그냥 개발도상국에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버려지고 있는데 저희가 구독 서비스를 활성화함으로써 버려지는 기기 없이 끝까지 생애 주기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폐기할 때는 거기서 자원까지 추출하는 그런 모델을 그리고 있습니다.
Q. 저도 전자기기 버릴 때 어디에 버려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하는데요.
A. 말씀하신 것처럼 대부분 집에 안 쓰는 스마트폰 한두 개씩은 꼭 있거든요. 우리나라 국민이 하나씩만 갖고 있다고 봐도 5000만 대입니다. 가치로 환산해보면 엄청나거든요. 한국은 광물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예요. 이런 광물이나 희토류는 채굴할 때 환경 피해도 발생하고요. 악순환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자 폐기물을 해외로 버리지 않고 우리가 회수·재활용해 수입 의존도를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현재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 건가요?
A. 저희가 국내에서 중고 기기를 제일 잘 수거하는 대기업 계열사와 협업하고 있고요. 자원 추출 연구를 하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 스마트폰은 일체형으로 나오잖아요. 이걸 해체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배터리는 리튬이기 때문에 분쇄를 잘못하면 터집니다. 이 분리하는 작업을 다 사람이 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문제가 될 수 있죠. 저희는 현재 수리업체들에 일정 돈을 지급하고 이 작업을 해달라고 의뢰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도 고려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노인분들을 교육해서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Q.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자원도 활용할 수 있겠네요.
A. 네, 궁극적으로 이게 가치성 평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요. 환경을 생각한다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수익이 크게 없어도 손해만 안 본다면 무조건 하려고 합니다. 공장을 구축하는 것도 지금 계획하고 있거든요.
Q. 폰고 서비스 이용자 수는 늘어나는 추세인가요.
A. 아직은 초기 단계라 그렇게 이용자가 많은 편은 아닌데요. 일단 저희 카카오톡 친구로 가입한 회원은 1만 명 정도 있습니다. 하루에 30~40명씩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카페, 학원, 보험 분야에서 기업 간 거래(B2B)로 이용하는 구독 서비스도 있습니다. 배달하시는 분들은 내비게이션용으로 쓰기도 하고, 스타트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테스트용 기기로 쓰기도 하죠.
Q. 투자는 받으셨나요?
A. 이제 시드(초기) 투자만 받은 상태인데요. 프라이머,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투자를 해주셨습니다. 임팩트스퀘어라는 사회적 기업을 도와주는 벤처캐피털(VC)이 저희 멘토링을 해주고 있고요. 올가을께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Q. 중장기적 목표가 있을까요.
A. 전자기기 구독 서비스를 통해 자원 선순환을 돕고, 무엇보다 중고 기기가 새것만큼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휴대폰, 노트북 등을 넘어 프리미엄 가전도 다루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이슨 제품들은 너무 비싸잖아요. 그런데 한국 애프터서비스(AS)가 그리 잘돼 있지는 않아요. 그런 것도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션은 많은 사람에게 전자기기의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구독 서비스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이유죠.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