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테일러 화이트(45)가 그린 집도 그렇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엉성한 드로잉으로 집을 그려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어떤 집들은 화염에 휩싸여 불타고 있고, 어떤 집들은 균형을 잃은 채 과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 ‘안락하고 포근한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집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최근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만난 화이트는 “재난 속에서도 땅에 발을 붙이고 똑바로 서 있는 집을 통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세계적인 갤러리 데이비드 즈위너가 직접 꼽은 ‘떠오르는 젊은 작가’ 중 하나다. 지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전시 ‘하우스 마인드’는 화이트가 국내에서 여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미술을 늦게 시작했다. 35세가 다 돼서야 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전에 화이트는 바다를 누비는 해군이었다. “10년 가까이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이라크전 등 수많은 전쟁에 참전했어요. 매일매일 죽음을 마주하다 보니 항상 첫 번째 목표는 생존이었죠. 그러다 보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전역 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했죠. 그때 ‘내 본모습’을 알게 해준 게 미술이었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취약한 모습을 다 내보여야 가능한 것이거든요.”
이번에 선보인 ‘집 시리즈’는 그의 삶과 닮았다. 화이트가 오랜 방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은 것처럼, 그가 그린 집은 각자 처한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 있다. 위태롭게 한쪽으로 쏠려 있을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집은 그가 현대인에게 보내는 위로와 찬사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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