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직장인 박모 씨(31)는 출근 전 아침 시간부터 편의점을 돌며 ‘도시락 입고런’을 한다. 점포에 들어온 도시락이 매대에 진열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제품을 선점하는 것이다. 최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회사 근방 점포를 대여섯 군데는 돈다고 했다.
박 씨는 “회사 근처에서 비교적 싸게 먹을 수 있는 순대국밥도 1만원이다. 커피까지 마시면 1만5000~2만원은 나간다”며 “편의점에선 몇천원 선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도시락을 사먹는 게 생활비를 아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식사 한 끼 가격이 1만원을 넘나들면서 부담을 느끼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편의점으로 몰리면서 ‘도시락 전성시대’가 열렸다. 업체들 판매 전략도 먹혀들고 있다. 유명인과 협업한 제품을 출시하거나 각종 할인 행사를 내세운 마케팅 행사를 내세워 소비자층이 두꺼워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전년 대비 적게는 25%, 많게는 41%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20% 넘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일 생산한 냉장 도시락을 판매하는 컬리도 지난해 관련 매출이 46% 늘었다.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을 포함한 국내 도시락 시장 규모는 1조원 남짓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편의점 도시락의 인기는 지난해부터 무섭게 뛴 외식 물가의 ‘풍선 효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7.4% 올랐다. 유명 평양냉면 식당들은 본격 냉면철을 앞두고 최근 일제히 가격을 올려 냉면 한 그릇이 1만4000~1만6000원에 이른다. 지난 2~3월 버거 프랜차이즈 업계도 가격을 인상해 일부 버거세트 가격은 1만원을 돌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밥에 커피까지 5000원 정도에 해결 가능한 편의점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직장인과 학생 인구가 많은 오피스·학교·학원 상권에서는 편의점 점주 사이에서는 도시락 입고런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많이 팔려나간다. 서울 강서구 한 오피스 상권에 위치한 편의점 점주는 “매장에 오전 9시30분쯤 도시락이 입고되는데 매대가 채워지기 전부터 구매하려 기다리는 고객이 많다. 입고런을 하고도 허탕치는 고객들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수요가 늘자 업계에서도 잇따라 파격가로 도시락 신제품을 내놓으며 시장 확대에 열 올리고 있다.
편의점 GS25는 지난 2월 출시한 ‘김혜자 도시락'은 출시 50일 만에 300만개가 팔렸다. 김혜자 도시락 인기에 힘입어 최근 두 달 사이 GS25의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66.9% 신장했다. 특히 오피스·관광지·학원가에 위치한 매장이 전체 매장 대비 20% 이상 높은 매출 특수를 누렸다.
정상가 4500~4900원짜리 제품을 출시 기념 각종 할인을 중복 적용해 2000~3000원대에 판매하며 가성비를 극대화한 것이 인기 비결이었다. GS25는 이 도시락을 350~470원대로 최대 90%까지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행사를 이달 말까지 선보이며 흥행 행진을 이어갈 예정이다.
'백종원 도시락'으로 도전장을 내민 CU도 신제품 ‘백종원 백반 한판 정식 도시락’을 선보이면서 대대적인 할 판매에 들어갔다. 정가 4500원인 이 제품은 이달 말까지 500원 할인한 4000원에 판매한다. 여기에 구독 쿠폰과 통신사 제휴 등을 적용하면 2200원에 구매 가능하다는 게 CU 측 설명이다.
이마트24는 쌀밥과 볶음김치로만 구성된 '원더밥' 도시락을 1500원에 내놨다. 세븐일레븐도 개학 시즌 삼각김밥(1100원)과 사이다(1400원)를 묶어 78% 할인된 550원에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펼쳤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 급등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당분간 도시락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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