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대기근을 버티던 사람들은 점점 기적을 바라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소녀가 나타났다. 열한 살의 그 소녀는 넉 달 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살아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부르다고 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니 마을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기 바빴다. “그녀는 보석이에요. 기적이죠.” 기적의 이면에 진실이 있었다. 추악한 진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는 아일랜드에 나타난 기적의 소녀 애나와 그녀를 관찰하러 온 영국인 간호사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그렸다. ‘글로리아’ ‘판타스틱 우먼’ 등으로 명성을 쌓은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엘리자베스는 ‘작은 아씨들’로 2020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플로렌스 퓨가 맡았다.
영화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엠마 도너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의 소설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구에서 광범위하게 등장했던 ‘금식 소녀’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작정 끼니를 걸렀던 금식 소녀들은 대부분 종교적 이유에서 주위의 강압으로 ‘거룩한 거식증’을 강요받았다.
이야기는 애나를 관찰하는 간호사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애나의 사례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2주 동안 지켜봤지만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혼돈의 엘리자베스는 애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째서 애나가 금식하는지, 어떻게 먹지 않고도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비극의 전모가 드러난다.
작품은 내용뿐 아니라 파격적인 형식으로 더욱 모호하게 다가온다. 오프닝에서부터 영화 촬영장을 고스란히 비춘다. 영화 안팎의 경계를 일부러 허물어뜨리고 있다. 스튜디오의 철제 골조, 조명 장치와 벽면에 놓인 크로마키 스크린을 관객에게 노출한다. 화면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영화적 허구일까.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이름’이다. 쇠약해진 애나는 “이름이 바뀌면 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라며 단식을 이어간다. ‘기적의 소녀’라는 명분으로 죽어야 했던 수많은 ‘금식 소녀’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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