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시즌' 전성시대…연작소설이 돌아왔다

입력 2023-04-11 17:46   수정 2023-04-26 17:08

“창밖에는 고요하게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다.”

김청귤 작가의 소설 ‘불가사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김 작가가 최근 출간한 연작소설집 <해저도시 타코야키>에는 불가사리를 비롯해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 소설은 모두 바다를 키워드로 삼는다. 기후 변화로 바다가 세상을 덮어버린 뒤 물속에서 살아가는 인류를 그린다. 각각의 소설이 완결성을 지니지만 여섯 편 모두를 읽어야 비로소 작가가 그리는 세상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해저도시 타코야키>처럼 다수의 단편소설이 등장인물이나 배경 등을 공유하며 이어지는 형식을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문예지와 사보 등이 번창하던 1970년대에 주목받던 연작소설이 40여 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구독과 시즌제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연작소설의 부활을 가져왔다.

11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책 이름이나 부제목에 ‘연작소설’이 표기된 작품은 2010년 1종에 불과했다가 지난해 24종으로 크게 늘었다. 올 들어서도 <해저도시 타코야키>를 비롯해 정지돈 작가의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이홍 작가의 <씨름왕> 등 6종이 출간됐다.

정 작가의 연작소설집에는 네 편의 소설이 실렸는데 모두 ‘나’와 ‘엠’이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배경으로 산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등장인물은 물론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같다.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며 ‘이동(mobility)’이라는 개념을 여러 관점으로 논한다.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은 과거에도 있었다. 1970년대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같은 연작소설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제2의 연작소설 전성기’가 온 이유는 뭘까. 출판계에서는 소설을 선보이는 채널이 다양해진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연작소설은 말하자면 ‘하이브리드’ 형식이다. 각각은 단편소설이고 묶으면 장편소설이 된다. 전자책·오디오북 서비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짧은 호흡으로 소설을 선보일 수 있고, 동시에 종이책으로 전체를 엮어내기도 쉽다.

<해저도시 타코야키>가 대표적이다. 책을 펴낸 인플루엔셜의 최지인 한국문학팀장은 “이 작품은 인플루엔셜이 운영하는 오디오북 구독서비스 윌라에서 순차적으로 공개된 뒤 인플루엔셜의 한국문학 출판 브랜드 래빗홀에서 종이책으로 출간됐다”며 “마침 작가가 해저도시 3부작을 구상하던 중이라 이야기를 넓혀 여섯 편의 연작소설로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정 작가는 “과거에는 음악을 앨범으로 듣다가 요새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듣는 것처럼, 문학을 접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를 작가들끼리 한 적이 있다”며 “시즌제 드라마, 웹소설, 각종 구독서비스 등의 영향으로 독자들이 ‘따로 또 함께’ 읽을 수 있는 연작소설을 친숙해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는 “연작소설집의 성공 사례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2019년 출간된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미판이 출간된 후 세계적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더블린 문학상 등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출간된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집 <연년세세>는 만해문학상,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 등을 거머쥐었다. 장 대표는 “연작소설은 짧은 호흡의 콘텐츠에 익숙해진 독자의 요구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깊이 있는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 만큼 계속해서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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