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가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감사보고서에 ‘만기보유증권’의 위험성을 언급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KPMG는 SVB 파산 14일 전에 회사의 재무제표가 건전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대출에 대한 잠재적 손실만 ‘중요 감사 사항’으로 지적했다.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된 미국 장기국채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은행들이 보유 채권을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하면 공정가치가 아니라 원가로 보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채권 가격이 하락해도 장부상으로 평가손실을 반영할 필요가 없다. SVB는 작년 말 기준 910억달러의 만기보유증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당시 시장 가치는 760억달러에 불과했다. 150억달러 규모의 손실 위험이 있었지만 이를 회계장부에 반영할 필요가 없었다. 150억달러의 손실은 연말에 은행의 총자본 160억달러 대부분을 소멸시킬 만큼 큰 손실이다.
미국 회계규칙에 따르면 은행은 고객의 예금인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채권을 매각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만 보유 채권을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SVB가 과연 이런 조건을 충족했는지 의문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에릭 고든 미시간대 경영대 교수는 “감사인이 지하실의 화재를 언급하지 않고, 꽃 상자의 페인트가 벗겨졌다고 지적한 셈”이라며 “그들이 금리 인상 리스크(위험)를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다른 중소은행도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WSJ가 리서치 회사 캘크벤치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기보유증권 비중이 높은 10개 중소은행(SVB 포함)에 대한 감사 의견을 검토한 결과 어떤 곳에도 이런 내용은 지적되지 않았다. 이 중 9개 은행 보고서에는 대출 또는 부실 채권으로 인한 추정 손실 문제만 감사 사항으로 제기됐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