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11일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의사면허취소법)에 대해 중재안을 제시한 건 의사와 간호사 단체 간 정면충돌에 따른 의료 대란을 막고 야당의 본회의 강행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재안이 사실상 의사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란 평가가 나오면서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간호사단체는 “이미 수년간 논의를 거쳐 여야 합의가 끝난 간호법 대안을 모두 부정했다”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본회의에서 원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 갈등이 정국 경색으로 비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당정은 간호법 제정안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은 기존 의료법에 그대로 두도록 했다. 또 간호법 제1조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한 부분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자고 했다.
그동안 의사단체에서는 간호법이 통과하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간호사가 의사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현행 의료법의 규율 대상은 ‘의료기관’에 한정된다. 의사들은 간호법을 통해 ‘지역사회’까지 범위를 넓히면 추후 독자적인 진료, 나아가 개원까지 가능해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간호단체에선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만성질환 중심으로 의료 환경이 바뀌었다”며 “노인과 만성질환자는 의료적 치료와 돌봄 영역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간호 업무의 장소가 의료기관에 한정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당정은 간호법의 위상을 ‘처우 개선법’으로 낮추고, 핵심 쟁점에서 의사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당정은 중재안에서 개정안의 ‘금고 이상의 형’ 부분을 ‘의료 관련 범죄와 성범죄, 강력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으로 범위를 축소했다.
국민의힘이 의료계 쟁점법안에 대해 중재안을 제시한 건 잇따른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정부와 여당에 부담을 주고 있는 만큼 중재안을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겠다는 의도다.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해 지난 7일 시행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거부권 행사를) 좋지 않게 본다’는 의견이 48%에 이르는 등 반대 여론이 높은 것도 이유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정 중재안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간호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논의를 거듭해 도출해낸 안”이라며 “원점으로 돌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13일 본회의에서 원안을 예정대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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