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서 부사장까지 올랐다가 은퇴한 70세의 벤(로버트 드니로)은 30세 CEO 줄스가 운영하는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하여 줄스(앤 해서웨이)의 비서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경험 많은 70세 인턴과 열정 많은 30세 CEO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인턴’의 설정이다. ‘인턴’이라고 하면 정식 직원이 되기 전 수습기간 중에 있는 사회 초년병을 지칭하는 말로 통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색한 설정이고, 자식뻘인 직장 상사는 더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아직 체력과 능력은 충분하나 정년제도의 적용으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증가하는 현실을 보면 벤과 줄스의 스토리가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2025년에는 고령자의 비중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 또한 고령자의 고용촉진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제 고령자의 재고용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법적인 의미의 고령자는 젊은(?) 편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따르면 55세 이상이면 고령자다(50~55세는 준고령자). ‘인턴’이라고 하면 이른바 계약직이라고 불리는 기간제근로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간제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할 경우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되는데, 고령자는 이러한 간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세간에 계약직으로 2년 일하면 정규직된다고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고령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 ‘인턴’에서 벤의 근로계약 기간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라면 고령자는 3년, 4년의 기간을 정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기간제근로자로서의 지위가 유지된다.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주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정년 이전의 고령자라면 어차피 정년에 근로계약이 종료가 되고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실익이 적고, 정년 이후의 고령자라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인 경우 그 근로계약이 언제 종료되는지 알 수가 없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지난해는 고령자고용법이 가장 주목을 받은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때문이다. 고령자고용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채용, 임금 등에 있어서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정년을 그대로 둔 채 일정 연령 이후부터는 임금이 감액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 일정한 판단기준 하에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로서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위 판결은 정년이 연장되지 않은,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판결임에도, 위 판결을 기화로 많은 기업들이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관련 소송이 줄지어 제기됐다. 판례 경향이 이렇다고 하기에는 시기상조이나 아직까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과는 다르다는 취지의 판결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의 개정으로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고령자고용법에서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하도록 명시한 이상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쉽게 무효라고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고령자 고용과 관련해 또 한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회사에 기간제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규정이 있거나 반복 갱신되어 온 관행이 있는 경우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면 기간제근로계약은 한 번만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것이다(한 번만 갱신된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판례에 따르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더라도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으나, 일단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나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때 정년 이전의 나이라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더라도 정년에 이르면 근로계약이 자동 종료되나, 정년을 도과한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면 근로계약은 언제 종료되는지 모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정년을 도과하였기 때문에 정년의 제한을 받지 않는데, 마땅한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갱신기대권에 따라 근로계약이 계속 갱신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근로계약은 언제 종료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조금 과장하면 당해 근로계약의 종료 여부가 전적으로 근로자에게 달려 있는 종신(終身)계약이 될 수 있다. 물론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연령에 다다르면 갱신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겠지만, 정확히 몇 살이라고는 아무도 특정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년을 도과한 경우의 갱신기대권 인정은 보다 신중하고 엄격한 요건 하에서 인정될 필요가 있으나, 아직 법원에서는 정년 전과 후의 갱신기대권을 특별히 구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 인턴에서 벤이 갱신기대권을 주장하면서 내가 다니고 싶을 때까지 다니겠다고 하면 줄스는 매우 당황하여 인사담당자를 째려볼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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