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2일 18:2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 자본시장에 드라마를 쓴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의 중심에 있었지만 현재까지 언급조차되지 않은 인물이 있다. 장재호 SM엔터 최고전략책임자(CSO)다. 이성수·탁영준 전 공동대표에서부터 권보아, 안칠현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사내외 임원들이 3~4줄씩 자신의 학력에서부터 대표 이력을 넣어놓은 SM엔터의 공시란에서 유일하게 그의 이력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CSO' 단 한 줄 뿐이다.
이성수 전 대표(현 프로듀싱본부장)의 지원 아래 막후에서 전권을 휘두르던 그는 지난해 10월 이수만 전 총괄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이후 장 CSO는 하이브가 SM엔터의 경영권 인수를 포기한 다음날인 3월 13일 회사로 출근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이브의 M&A 시도를 막아내고 현 이사진의 독립을 이끌어낸 공로였다. 지배구조 투명성을 이뤄내고 SM 3.0을 실현하겠다는 새 경영진과 외부 사외이사,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도 그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15층 실력자' 군림한 장재호…'이수만 지우기' 총대
장 CSO는 2021년 5월 SM엔터에 성장전략실장이자 자회사인 SM브랜드마케팅의 사내이사로 입사했다. 당시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이한 이 전 대표의 요청이 반영됐다. 합류한 지 1년도 채 안 된 2022년 3월 경엔 SM엔터의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중책을 맡았다. SM엔터 직원들도 중요한 보고를 앞둘 때면 15층에 있는 그의 방을 찾아 의논하고 재가받는 일이 일상이었다. 전현직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어차피 이 전 대표도 모든 의사결정을 나와 상의하니 먼저 나와 논의하는 게 빠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C레벨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사내에서 그의 역할과 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인물이기도 했다. 이수만 전 총괄의 처조카 이성수 본부장의 어린시절 절친한 친구였다는 점이 유일하게 드러난 이야기다. 임원의 학력과 이력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던 사내 규정도 그의 입사 이후 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의 임무는 경영진과 얼라인파트너스와 함께 SM엔터에서 이 전 총괄의 영향력을 지워가는 일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전 총괄도 낌새를 느끼고 이성수 당시 대표에게 "장재호와는 일하지 말라"고 수차례 호통을 친 것으로 전해진다.
장 CSO는 SM엔터의 숨은 실세로 상당 부분의 CEO 역할을 담당했다는 게 안팎의 증언이다.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는 각자 전문성이 있는 음악 프로듀싱이나 매니지먼트 부분에 신경을 더 썼다.
작년 2월 임직원들에게 132억원 규모의 스탁그랜트를 지급한 것도 장 CSO 작품이었다. 그 때 이성수, 탁영준 공동대표는 각각 2만주의 자사주를 상여로 받았다. 장 CSO도 8000주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스탁그랜트로 받은 8000주 전부를 반년만에 장내에서 팔아 6억원대 현금을 쥐었다.
당시 이수만 총괄은 스탁그랜트를 주도했던 장 CSO가 단기 차익을 실현하자 노발대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작년 10월 그는 건강상의 이유와 이 전 총괄과의 갈등이 겹치며 SM엔터를 퇴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회사가 장기 임대해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지내며 모든 경영 전략을 주도했다. SM엔터는 그와 별도의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하이브·얼라인 모두 상대한 SM엔터 '비선'
그의 역할이 부각된 건 올해 1월 20일 행동주의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이 전 총괄 논의없이 이사회 독립을 선언하면서다. '반란' 직전에도 장 CSO가 SM엔터 경영에 개입하는 점에 불만을 표출한 이 전 총괄과 이에 항의한 이 전 대표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장 CSO는 치열하게 펼쳐진 SM엔터 경영권을 둔 복마전에서 회사 측 전략을 세우고 대응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SM엔터에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얼라인파트너스 측 입장을 회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카카오 및 하이브와 협상장에서도 SM엔터를 대표해 테이블에 앉았다. 하이브의 인수 시도를 막기 위해 단행된 주가 부양 등 방어 전략을 짜는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SM엔터는 하이브로부터 백기를 받아냈고, 카카오가 1조2500억원을 쓰고도 경영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지금의 지배구조를 이끌어냈다. 카카오의 지상목표인 카카오엔터 상장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카르텔을 설계한 인사다.
이 전 총괄 측은 장 CSO를 SM엔터의 '비선'으로 부른다. 분쟁이 종료되고 장 CSO가 돌아오자 사내에서 그의 이력이 조금씩 알려졌다. SM엔터 직원들은 장 CSO가 아주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아주대 후배와 함께 중국에서 역직구 이커머스 사업을 하는 에이컴메이트를 운영하다가 NHN 측에 매각하고 먼저 회사를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CSO의 복귀 후 첫 임무는 이 전 총괄 측으로 분류된 자회사 임원들에 대한 '숙청'이 될 것으로 보인다. SM엔터 경영지원 직원들의 컴퓨터 포렌식 조사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괄이 보유한 드림메이커 24.14%, SM브랜드마케팅 42.31% 지분 처리 문제가 그의 임무다. 그는 일부 관계자들에게 두 회사 지분을 하이브가 인수하면 SM엔터가 같은 가격으로 되사와 이 전 총괄 측으로 분류되는 자회사 경영진을 곧바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하이브와도 이미 합의를 이뤘다 자신했지만, 하이브는 공식 부인했다.
최소 3년에서 무기한 경영 독립성을 보장받은 SM엔터의 현 지배구조 하에서도 장 CSO 주도로 얼라인파트너스와 조율 하에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분위기가 짙다. 최근엔 현 경영진이 장 CSO에 이사회 소집과 관리 및 보고 등을 전담하는 업무를 맡겼지만 장 CSO가 M&A 업무에 전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이성수 대표와 함께 하이브처럼 다양한 프로듀싱 역량을 가진 레이블 M&A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있다"고 말했다.
대주주인 카카오도 이들에게 입김을 불어넣기 어려운 구조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전문책임자와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연결고리 등 이번 인수과정에서 벌어진 모든 사안을 꿰뚫고 있는 인사는 사내에서 장 CSO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장철혁 대표이사를 제외하면 사내이사 중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사도 전무하다. 아티스트들의 음반 홍보를 맡은 김지원 이사와 가수들의 해외진출을 도운 최지원 이사는 경영과 관련한 주요 결정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평가된다.
"새 이사진이 최고의 인물들로 구성됐다"며 치켜세운 SM엔터의 사외이사들도 장 CSO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사회 독립을 표방한 현 경영진 체제 하에서도 이수만 체제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SM엔터의 실질적 권력을 쥔 것이 이 회사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수만 창업자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 계약을 종료시킨 것에 대해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결과로 장재호 CSO 중심으로 돌아가는 SM엔터 경영 체계가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가 말하는 선진 지배구조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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