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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떠나는 창업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혁신가들이죠. 하지만 이면엔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국에선 이런 혁신이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디캠프(은행권 청년창업재단) 센터장을 지낸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혁신가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한경 긱스(Geeks)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비 오는 날 화단에 물 준다'.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모습은 익숙하다. 영혼 없이 부품화돼 오직 길고 가늘게 직장생활을 하려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어쩌면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에서 이런 선택은 당연하다.
한국은 빠른 근대화 과정에서 기업이나 정부 조직의 효율적 시스템이 크게 발전해 왔다. 거대 자본이 필요한 자산 위주의 경제(Asset base economy)에선 극단적 효율성 추구가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저히 기능적으로 분업화되고 책임과 권한이 명확한 프로세스는 개인의 자기 주도성과 창의성을 억제하게 된다. 주인 의식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적 사고와 이에 맞춘 인재상은 대량 생산 과정에서 표준화와 몰인격성을 초래한다. 구성원 모두 합리적이고 표준적 사람이라는 전제의 이면엔 무차별성과 몰인격화가 자리하고 있다.
경제 효율의 이면
대기업 혹은 기득권을 보장하는 '면허증(라이선스)'이 주는 안정감을 선택하고 안주하는 순간, 외부 변화에 둔감해지고 인간 본연의 생존 본능은 내부 자원을 획득하는 쪽으로 전환되고 만다. 심지어 최고경영자(CEO)도 마찬가지다. 자리 자체가 중요할 뿐 개인의 역량 차이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성공과 실패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은 실패 없는 사업만 시도하고 있다. 성공한 사업만 홍보하고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 실패한 서비스와 시도를 공개적으로 모아놓은 '구글의 무덤'을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후적 판단인 법률적 제재의 증거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모난 돌 정 맞는다'는 말이 여전히 통용된다. 시도하지 않는 한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는 표면적으로 아주 평온한 합리적 사회,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효율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정 맞는' 새로운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평등과 화합의 시스템 안에서 부품화되는 획일화된 인재상으로 개인을 억누르는 게 언제까지 유효할까.
혁신 경제로의 전환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의 혁신은 국경과 회사, 가정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는 초개인화를 앞당기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는 표준화를 지나 개별화하고 있다. 연결 인프라의 확대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지식경제(Knowledge Base Economy)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다.
여기에선 거대 자본이 아닌 아이디어에 기반한 작은 혁신으로 창업 성공이 가능하다. 과거 자산 위주 경제에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부품화된 인재상이 중요했지만, 혁신 경제는 '자기 것'에 대한 본능적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도한다.
혁신 기술의 파급력은 정치 체제의 개혁과 소수 지역 문화에 대한 글로벌 접근성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 국가와 국경의 새로운 정의까지 요구되고 있다.
창업가는 자발적 부적응자
필자는 창업가를 '자발적 부적응자'로 정의한다. 17세기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모든 혁신은 비이성적인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혁신은 현실에 적응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자발적 부적응자와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작고 가벼운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자국의 산업 및 경제 체제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기존 산업과 조직의 '메기'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식경제가 도래하면서 지식과 열정을 가진 창업가의 유치가 대규모 자본의 유치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자발적 부적응자이자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는 스타트업은 이미 의미 있는 고용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2022년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스타트업 3만3000개 사가 총 74만5800명을 고용했다. 전년(68만9662명)보다 8.1%(5만6000명)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고용 규모는 1455만33명에서 1489만8502명으로 2.4%(34만8469명) 증가했다. 벤처·스타트업의 신규 고용 증가율이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자본과 자산 중심의 대기업 위주 성장은 고용 유발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 효율화와 시스템화는 인력 축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존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은행 지점 점포 축소도 생존 활동의 연장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타트업은 사업 모델이 무엇이든 일단 사람을 필요로 한다. 기업은 크든 작든 생존하고 작동하기 위한 기능적 요소는 동일하다. 어느 수준까지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력 고용이 늘게 된다. 물론 스타트업 창업이 고용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한국 떠나는 혁신가들
자본과 인재의 이동 양태는 한 국가 내에서의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의 자유에서 국가 선택의 자유로 범주가 확대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로의 급격한 이전은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국내적 현상이었다. 앞으론 지식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인재의 해외 이주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에 모기업을 두지 않은 채 해외에서 처음 창업한 '본 글로벌' 스타트업은 계속 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북미·아시아·유럽 등 29개국의 한국인 창업 스타트업 259개 사 중 51%(132개 사)가 본 글로벌 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본 글로벌 스타트업 비중은 2020년(37%), 2021년(46%) 조사 때보다 높아졌다.
젊은 MZ(밀레니얼+Z세대)세대의 폭발적인 이직률 증가는 결코 인내심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열정을 투자했다면, MZ세대는 조직에 적응하는 노력보다 자기와 정서적으로 맞는 곳에서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는 크기와 온도의 열정을 가지고 일할 뿐이다.
미국 경제지 포보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10억 달러 이상의 미국 스타트업 582곳 중 55%인 319곳은 이민자가 창업했다. 주요 리더십 역할을 맡기는 경우까지 계산하면, 미국 유니콘 기업의 80%가 이민자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처럼 국가 선택의 자유도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절이 싫으니 중이 떠난다고 폄훼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고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소극적으로는 무관심과 포기로 반응할 수 있다. 출산율 저하는 이런 무관심과 포기의 표현이다. 모든 사회적 선택은 결국 경제적인 동인, 즉 선택의 기회비용 함수이다.
젊은 세대는 한국이 싫어서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출산 포기라는 자연선택을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경우라면, 본인의 생존을 위해 '이전의 권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필자가 만나는 젊은 창업자 중에선 한국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미국 혹은 기타의 국가로 창업 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선 여전히 '창업은 3대가 망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사회에서 자발적 부적응자들의 '비이성적'인 국가 선택의 권리 행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의 의미
혁신(스타트업)은 불가능한 것, 없는 것, 실패 가능성이 농후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비이성적 본능으로 경계 밖의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렵고, 혁신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혁신 스타트업 창업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과 소유 본능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보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기회와 기존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라는 측면에선 `진보적 가치'를 가진다.
60년 전 이병철과 정주영은 당시 기준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을까? 20년 전 김범수와 이해진은 그들의 대학 동기 혹은 친한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었을까?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는 세상에 자기를 적응시키려 노력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을까?
과거 현대는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조선소를 유치했고, 삼성은 당시의 기술로는 도저히 `계획`할 수 없는 반도체 공장을 만들었다. 이런 비이성적인 자발적 부적응자들이 혁신가의 다른 얼굴이다. 이들의 계산되지 않고 측정 불가능한 무모한 도전이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 그들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다. 모든 창업자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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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ㅣ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1966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대구고, 경북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1년 산업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까지 리먼브라더스, 노무라증권 등에서 일하며 금융권 경력을 쌓았다. 2011년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대표, 2013년엔 IBK자산운용 부사장을 지냈다. 2018년부터 3년간 디캠프 센터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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