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이상은 커피가 흔치 않던 1933년 카페를 열었다. 이름은 ‘제비다방’. 서울 종로 1가 33번지, 지금은 오피스 건물 ‘그랑서울’이 들어선 자리다.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바로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래도 경성역을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이상은 1936년 펴낸 단편소설 ‘날개’에서 그에게 ‘한 잔의 위로’가 됐던 커피를 이같이 표현했다.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90년 뒤 한국인들에게 커피는 일상이 되고, 전국 곳곳에 10만 곳에 달하는 카페가 퍼지게 될 것을.
국제 커피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금액이 커진 영향이 있지만, 수입량도 적지 않게 늘었다. 커피 수입량은 전년보다 9.5% 증가한 20만2000t으로 처음으로 20만t을 넘어섰다. 2012년 수입량 10만6000t에 비하면 10년 새 두 배 늘어난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는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1명당 367잔이다. 성인 기준으로만 따지면 상당수 가 1년 365일 중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시는 셈이다. 프랑스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551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 세계 평균이 161잔이란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이 보다 두 배에 달하는 음용량을 과시한다.
한국인의 못 말리는 커피 사랑 덕에 한국엔 골목마다 카페가 많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커피 및 음료점업 점포 수는 전년 말보다 17.4% 증가한 9만9000개로 역대 최다다. 2018년 4만9000개에서 4년 새 두 배가 늘었다.
집과 오피스에서 즐기는 커피도 점차 고급화되고 있다. 기존 인스턴트 커피 외에 캡슐 커피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국내 캡슐 커피 시장은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내 전체 커피 산업 규모를 8조6000억 원으로 추정한다.
고종황제가 1896년 망명 이후 러시아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셨다는 통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이미 그 전부터 조선에 커피가 있었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1885년 펴낸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1884년 1월 한강 변에서 커피를 접대받은 사연을 적었다. 1860년 프랑스인 신부 베르뇌 주교가 홍콩에 보낸 서신에는 한국으로 커피를 주문한 흔적이 있고, 1840년대에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신부가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커피를 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인 중 최초로 다방을 차려 커피를 팔았던 인물은 영화감독 이경손이다. 그는 1927년 안국동 네거리 근처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다. 카카듀는 프랑스혁명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 모였던 술집의 이름을 따왔다. 일제강점기 그 시절의 다방은 그랬다. 시대적 각성을 은밀하게 논하던 지식인의 아지트로 여겨졌다. 물론 부잣집 도련님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랑방이란 엇갈린 평가도 있었다.
올림픽의 열기가 서울을 뜨겁게 달구던 1988년, 압구정동에 최초의 커피전문점인 쟈뎅 커피타운이 문을 열었다. 원두를 그 자리에서 내린 에스프레소, 카페오레, 카푸치노가 등장했다.
1999년엔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열었다. 손님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 마시는 ‘테이크아웃’ 문화가 퍼졌다. 커피를 날라주고 따라주던 ‘레지’가 있는 다방은 그즈음부터 빠르게 사라졌다.
서울에 첫 커피전문점이 생긴 지 35년이 흐른 지금, 한국인에게 커피는 더 이상 단순 기호식품이 아니다. 일상이 돼 버렸다. 직장인에겐 ‘생명수’라고 불릴 정도다.
하지만 커피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 2~3잔을 넘어서면 건강에 좋지 않다. 커피에는 중독성 물질인 카페인이 포함돼있다. 하루 권장 카페인 섭취량은 성인 기준 약 400mg이다. 커피를 하루 4잔 넘게 마시면 카페인 일일 섭취 권고량을 초과할 수 있다는 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설명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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