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삽관을 준비하던 의사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응급실에 막 실려 온 환자는 병색이 완연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이대로 둔다면 호흡이 점점 줄다 숨을 거둘 터였다.
베크론은 신경근육차단제인 베쿠로늄브롬화물(Vecuronium Bromide)의 제품명이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곽경훈 씨는 자신이 쓴 <약빨>에서 “베크론을 투여하면 심장근육을 제외하고 근육 대부분이 정지한다”며 “당연히 호흡근육도 멈춘다”고 했다.
‘현직 의사가 들려주는 약의 세계’라는 부제가 붙은 <약빨>은 이렇게 저자의 응급실 경험으로 각 장을 연다. 그다음 그 약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사람 몸에 작용하는지 설명을 붙여 나간다.
신경근육차단제, 이뇨제, 전신마취제, 메스암페타민, 인슐린, 에피네프린, 항생제, 키닌, 스테로이드, 아스피린 등이다. 약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려면 긴 플라스틱 관을 기관까지 삽입해야 한다. 기관은 목구멍을 한참 넘어 폐의 입구까지 이어지는 공기 통로를 말한다. 기도로 물 한 방울만 넘어가도 심한 기침을 일으키는데, 그보다 큰 플라스틱 관을 넣으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그래서 베크론 같은 약물로 대부분의 근육을 멈추게 한다.
신경차단제는 전신마취 등 큰 수술을 할 때도 쓰인다. 마취하면 고통은 못 느끼지만 반사는 남아있다. 근육이 움찔하거나 갑자기 수축 또는 이완하며 정교한 수술을 방해한다. 환자가 수술 중 자기도 모르게 기침해 인공호흡기가 빠지기도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신경근육차단제를 써야 한다.
신경근육차단제가 발견된 과정도 흥미롭다. 15~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유럽 사람들이 아마존강 유역에 사는 부족들이 독침을 쏘아 동물을 사냥하던 것을 보고 이를 알게 됐다. ‘쿠라레’라 불리는 그 독은 야생식물인 콘도덴드론에서 채취했는데, 동물의 근육을 마비시켰다. 신기한 독으로만 치부되다 1942년 캐나다 마취과 의사인 해롤드 그리피스가 충수 제거술에 쿠라레를 사용하면서 본격 도입됐다.
책은 항암화학요법이 1차 세계대전 때의 독가스인 ‘겨자가스’에서 생겨났다거나, 마약인 메스암페타민을 처음 투여했을 때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나 그 이후엔 아무리 메스암페타민을 투여해도 그 희열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겉만 봐선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책이다. 새빨간 표지에 본문엔 글만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안에 병원 응급실의 생생함과 우리가 몰랐던 약들에 대한 정보, 그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까지 알차게 담겨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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