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물가를 ‘케첩병 흔들기’에 빗댄 적이 있다. <경제는 정치다>란 책에서다. 케첩병을 흔들 때처럼 물가도 ‘처음에는 서서히 오르다가 나중에는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첩병 이론’이 적용되는 건 물가뿐이 아니다. 나랏빚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데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버린다. 문재인 정부 5년이 그랬다. 이 기간 국가채무는 400조원 넘게 늘었다. 김대중 정부 85조원, 노무현 정부 165조원, 이명박 정부 180조원, 박근혜 정부 170조원보다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해마다 80조원 넘게 증가한 셈이다.
그래도 지난 2년간은 세수가 119조원이나 더 걷히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올 1, 2월 세수는 1년 전보다 15조7000억원 덜 걷혔다. 이대로면 올해 최소 20조원의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 상당수가 올해 실적 부진에 빠졌다. 주식·부동산시장도 긴축 여파로 과거 호황 때만 못하다. 단기간에 세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올해부터 4년간 정부가 갚아야 할 이자도 100조원에 육박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인데도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부터 주장한 기본대출을 다시 꺼냈다. 성인 누구에게든 최장 20년간 최대 1000만원씩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향후 5년간 73조원이 필요한 기초연금 확대 법안(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65세 이상 전체)도 발의했다. 대통령이 거부한 양곡법 개정안(남는 쌀 의무매입법)도 재의결을 추진하고 있다.
선심성 정책은 달콤해 보이지만 공짜가 아니다.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오고 국가 신용마저 위태롭게 한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재정적자 절감 대책 없이 덜컥 경기 부양책을 띄웠다가 파운드화와 국채 값이 폭락하자 총리가 물러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세계적 금융위기 전문가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당시 “시장이 정부의 방만한 적자재정과 정책 실패에 덜 관용적인 시대가 시작됐다”고 했다. 비단 영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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